소개글
2019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허주영의 첫 시집. 허주영 시의 화자들은 원하는 대로 몸을 바꾸거나 원하는 대상과 자유자재로 소통할 수 있는, 변신이 가능하고 언어를 초월한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열다섯 소녀일 때도 있고, 소녀였던 적이 없는 누군가일 때도 있다. 동시에 소년이었던 적이 있다고 말하고, 곧바로 그 일이 가짜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허주영의 ‘나’는 자기 자신으로 우글거리지만 동시에 텅 비어 있는 존재다. 비어 있어 변할 수 있고 비어 있어 채워질 수 있는. 허주영의 화자들은 여러 개의 ‘나’를 내세우며 친구들이 모이는 공터로 나간다. 허주영의 투명하고도 알록달록한 화자들은, 어느 공터에서 모두가 모이길 기다린다. “새로운 친구를 맞이할 채비”를 하는 것이다. 마침내 “다들 모였”을 때, ‘나’와 친구들이 하는 놀이는 ‘나’의 존재만큼 다양하다.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공놀이일 때도 있고, 서로를 찾아야 하는 숨바꼭질일 때도 있다. 다만 어떠한 게임을 하더라도 그들은, 우리는, 결국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인식하는 시간 속에 있다. 공을 던지는 손을, 꼭꼭 숨어 버린 머리칼을 바라보고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시집 『다들 모였다고 하지만 내가 없잖아』를 읽는 동안 우리는, 공터 같기도 하고 내면 같기도 한 시 속에서 ‘진짜 나’의 조각에 눈을 뗄 수 없는 공놀이를, 혹은 ‘진짜 나’를 숨기고 싶은 숨바꼭질을 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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