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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2025 힐링하는 글쓰기] 정은교 교육생 수필: 내 안에 조명이 켜질 때-좋은생각 인스타

조회수 19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5-10-10 좋아요 1

도서명2025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문장이 될 때

저자백선순, 신나라, 심연숙, 안시아, 엄다솜, 정은교,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수필] 내 안에 조명이 켜질 때


 어제보다 깊은 어둠이 스며든 밤 오래된 기억 하나가 슬며시 떠오른다. 벌써 7년이 흘렀다. 옷깃을 여미던 추운 날이었다. 나는 봉천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길 위에서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있었다. 그건 흰지팡이를 든 사람들이 일렬로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바닥을 툭툭거리며 더듬더듬 무언가를 찾는 모습 같았다. 강사의 목소리에 따라 움직이던 그들의 모습은 내게 낯설고도 묘하게 선명했다. 나는 그때 아주 무심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저렇게 앞이 안 보이면 어떻게 살까?’
 ‘참 안됐다.’
 ‘남 일이지만 안쓰럽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내 주변을 처음 둘러본 느낌이랄까! 어리석게도 장애인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저 측은해 하는 감정만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뒤 1년쯤 지났을 때 내 삶의 반전이 일어났다. 나도 흰지팡이를 의지해 점자 블럭 위를 걸어가는 보행 교육생이 되었다. 그날의 풍경은 이제 나의 기억이자 미래가 된 것이다.
 20년 전 처음 안과를 찾았을 때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명을 들었음에도 보이는 건 크게 지장이 없었기에 실명을 한다는 말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살면서 시각장애인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그저 낯설기만 한 존재였고 다른 세상 사람들이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도,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내 앞에 닥친 회사업무와 일과 연결된 아이디어만이 머리를 메우고 있었다. 흔히 기업에서 통하는 말이 있다. '매출은 인격'이므로 관리자인 나는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고 거래처와의 관계 개선만이 일상 속 관념을 메웠다. 어느 순간부터 시력은 하루가 다르게 급속히 떨어지고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거래처에서 잘 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눈치 챌까 봐 두려웠다. 직장은 내 오랜 자부심이며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중요한 터전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귀갓길 그만 교통사고가 나고 3개월간 누워만 있는 병원 생활을 했다. 이제 직장생활은 이어갈 수 없음을 자각했다. 시력의 소멸은 안개 속 길 찾기 같은 두려움뿐이었다. 의사가 실명을 예고했듯이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9년 내 손엔 주민등록증을 대신해서 장애인임을 증명하는 복지카드라는 신분증을 갖게 되었다. 5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시각장애인이 되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가 멍해지기만 했다. 그 순간 기억 저편의 봉천역을 지날 때 봤던 보행 교육생이 문득 떠올랐다. 무작정 달려간 그곳은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편안히 안내를 해주었다. 세심하고 따뜻하게 천사의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켰다. 시력이 없어지니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마음의 평정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부터 복지관의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같은 어려움을 가진 동료들의 다양한 스토리는 동병상련을 느끼게 했다. 마음을 열고 나니 위로가 힘이 되었다.
 예상하지 못하는 게 삶이라는 사실은 인생 2막을 준비하는데 용기가 되었다. 내가 뭘 하면 좋을지 알기 위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오디오북을 들으며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글쓰기 자조모임을 통해 다양한 시선에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문학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다. 문장력은 없었지만 내 경험과 생각을 표현하고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다른 감각의 확장을 알게 되고 글쓰기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책과 친하지 않았던 내가 소설과 에세이를 항상 곁에 두고 읽는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가슴속 이야기를 꺼내어 쓰다 보면 묘한 자유마저 느낀다. 모임의 동료들과 한 작품씩 가벼운 토론과 소회를 나누다 보면 다양한 해석에 전율을 느끼고 이해의 폭도 넓어지는 걸 경험한다. 그렇게 나만의 해방일지를 쓴다. 나를 들여다보는 지금은 장애라는 무거움보다는 영감의 바다로 갈 수 있는 긍정의 플랫폼이라는 걸 느낀다. 내 생각의 가지마다 새로운 열매가 맺히고 있음을 설렘으로 기다려 본다.

 

* 해당 글은 2025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교육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 해당 글은 '좋은 생각' 인스타툰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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