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54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6-01-02 좋아요 0
도서명2025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문장이 될 때
저자백선순, 신나라, 심연숙, 안시아, 엄다솜, 정은교,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서툴지만 괜찮아 아빠
‘서툴지만 잘할 수 있다는 용기와 믿음 그리고 사랑이 있어 아빠와 나는 늘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고비가 닥쳐와도 늘 아빠가 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 분만실 안
나는 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아내가 힘들게 출산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가 괜찮은지 아이는 언제 나오는지 나는 그저 초초하기만 했다. 그때 분만실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응애응애.”
분만실 안에서 작은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넣어 분만실 밖으로 나오시는 간호사 선생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를 보기 위해 손소독과 위생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간호사 선생님께서 인큐베이터를 끄고 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차예지님 보호자님.”
“네.”
“이쁜 공주님이세요. 손가락 발가락 다 100개씩 확인하셨죠?”
“네?”
“아… 죄송합니다. 손가락 발가락 다 10개씩 확인하셨죠?”
“아, 네.”
“간호사 선생님, 그럼 아이는 건강한가요?”
“그건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실 거예요. 산모 분은 회복실에서 나오시면 뵐 수 있으세요.”
간호사 선생님께서 아이를 보여준 뒤 나는 아내가 있는 회복실로 가 아내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와 아내의 상태를 말씀해 주시기만을 기다렸다.
“선생님, 아내는 건강한가요?”
“네, 산모 분은 수술도 잘 되었습니다. 회복만 잘 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네.”
“그럼 아이는 어떤가요?”
“아이는 일단 황달도 있고, 또 몇 가지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건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내가 제왕절개를 한 터라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올라갔고 나는 신생아실로 가 아이를 보았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는 속싸개에 싸여 눈도 가려진 채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 한참 아이를 보고 나서 입원실로 내려왔다. 입원실로 돌아오니 아직 아내는 자고 있었다.
다음 날 의사 선생님은 회진 도중 아내를 보러 별실로 들어오셨는데 왠지 표정이 뭔가 좋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아내는 괜찮은 건가요?”
“네, 수술 부위도 잘 아물고 있습니다. 회복만 잘 하시면 됩니다. 근데… 아이가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요?”
“왼쪽 귀는 전혀 들리지 않고 오른쪽 귀는 그래도 청각이 살아 있습니다.”
“네? 그럼 수술은 가능한가요?”
“아니요, 오른쪽은 그래도 보청기는 가능합니다.”
“…….”
“그래도 한글 가르치시면 한글과 입 모양을 보고 대화는 가능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내에게는 제가 말하겠습니다.”
“네, 그럼.”
이게 무슨 날벼락인 건지 딸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귀가 안 들린다는 말을 들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해져서 아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내가 어떻게 하면 충격을 덜 받을지 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내가 눈을 떴다.
“일어났어?”
“응, 아기는 괜찮아?”
“응, 잠시 인큐베이터에 있어. 모레나 볼 수 있어.”
“그래, 아쉽다. 자기는 봤어?”
“응.”
“이뻐? 누구 닮았어? 나 닮았어? 자기 닮았어?”
“자기 닮았어.”
“진짜?”
“응.”
“빨리 보고 싶다.”
아이를 보고 싶어 저렇게 기대하는데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수술하고 난 당일은 금식을 해야 했기에 내가 찍어둔 아기 사진만 연신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이구, 빨리 보고 싶다.”
“그렇게 보고 싶어?”
“응, 당연하지.”
“조금만 참아, 알았지?”
“응, 알았어.”
3일이 지나 아이는 신생아실로 옮겨져 아이를 면회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아내를 부축해서신생아실로 걸음을 옮겼다.
“기대된다.”
“차예지 산모님, 아기 면회 왔습니다.”
“네, 잠시만요.”
“오, 이뻐라. 나 닮았다 진짜.”
“그치.”
“응, 코랑 귀는 자기 닮았어, 그치?”
“그런가, 모르겠어.”
“맞는데 뭘.”
“좀 더 있어봐야 알지.”
“그런가.”
“들어가자, 예지야.”
“응.”
아내를 부축해 다시 병실로 이동하면서도 나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이제는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한가득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차예지 산모님 곧 퇴원이시죠?”
“네…? 아… 네.”
“아기가 너무 예쁜데 안 됐어요.”
“하하, 간호사님, 저희 들어가 볼게요.”
“네? 네.”
“무슨 말이야? 우리 아기가 왜 안 됐다는 거야?”
“어… 그게 나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아리 청각에 문제가 있대.”
“무슨 문제?”
“왼쪽 귀는 아주 듣지를 못하고 오른쪽 귀는 보청기 끼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정도래.”
“뭐???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고?”
“응, 그래도 듣고 말한다는 게 어디야.”
“하…. 그래도 장애인은 장애인이잖아!!!”
“왜 그래? 같이 아이 잘 키우면 되잖아. 다른 아이들처럼 잘 키우면 되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어쩔 건데!!”
“소리 좀 낮춰. 네가 그렇게 시선 의식하면서 지금 네가 다 떠들고 있잖아.”
“이 와중에 소리 낮추게 생겼어??!!”
“진정 좀 해!! 여기 집 아니야.”
“하… 기막혀.”
“그리고 시선이 뭐가 중요해? 우리만 아리 잘 키우면 되지.”
“난 못 키워 절대!!”
“뭐라고?”
“못 키운다고, 내가 힘들게 낳은 딸이 장애인이래. 나는 창피해서 못 키워.”
“못 키우면!!! 못 키우면!! 어쩔 건데??”
“이혼이 답이겠지.”
“이혼? 이혼이 그렇게 쉬워???”
“어, 그리고 자기가 더 괘씸해. 3일을 숨겼다는 사실을 말이야.”
“자기가 충격 받을까 봐 아리 신생아실 가면 말하려고 했어.”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 말하나 지금이나 달라지는 게 있었을까?”
“뭐???”
“인큐베이터에 있었을 때 말했던 지금 말했던 난 못 키워. 그게 답이야.”
“하… 다시 생각해. 아직 퇴원하려면 며칠 남았어.”
“조리원 퇴소할 때까지 생각해.”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아내와 아리는 산부인과에서 입원을 무사히 마치고 조리원에 입소를 했으나 아내는 아리에게 모유 먹이는 것을 거부했고 유축을 해서 달라고 간신히 설득해서 주는 걸로 합의를 봤다.
“나 퇴소하고 친정으로 갈게.”
“아리랑?”
“나만. 왜 아리랑 같이 가.”
“뭐?”
“아리 못 키운다 했잖아.”
“한 달의 시간을 줬는데 결론을 낸 게 친정으로 간다는 거야?”
“응, 부모님하고 이야기해 보고 말해 줄게.”
“알겠어.”
한 달이 지나 조리원에서 퇴소를 한 후 나는 아리를 데리고 부모님 댁으로 향하였고 아리의 상태를 전부 다 말씀 드리고 지금 아내의 상황도 말씀 드렸더니 어떻게 자기 새끼를 안 키운다고 말하냐고 분노하셨다. 어떻게든 예지를 잘 설득해 보라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화가 많이 나셨고 자기 자식을 안 키울 거면 왜 낳았느냐고 화를 내시곤 끝내 안 키우겠다 하면 이혼하라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자기 새끼를 안 키우겠대? 아픈 새끼도 새끼 구만.”
“설득해 보고 나서 이혼해도 돼.”
“설득은 무슨. 이혼하겠다면 이혼해. 아리는 내가 키워 주마.”
“네, 어머니.”
이혼하면 양육권은 내가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며칠 후 아내는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마지막으로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자며 처갓집 근처 카페로 오라고 말했다. 나는 아리를 어머니께 맡기곤 차를 몰고 카페로 향했다.
“왔어?”
“응.”
“어떻게 생각이 바뀐 거야?”
“아니, 이혼하자.”
“뭐?”
“이혼하자고.”
“하… 그럼 양육권 나주고 친권 포기 각서 써.”
“그래, 알았어.”
아내와 나는 이혼 절차를 밟았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이 계신 파주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께서 아이를 돌봐주시겠다고 하셔서 부모님 댁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일을 하는 시간에는 부모님께서 아리를 돌봐 주시고 저녁에는 아리와 오롯이 둘이서의 시간이었다. 아리가 울기만 하면 배가 고픈지, 응가를 했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나에게는 모든 게 서툴기만 했고, 기저귀 가는 일, 분유 먹이는 일이 모두 서툴렀다.
“미안해 아리야, 아빠가 아직 서툴러서.”
아리는 조금씩 더 성장해 가고, 첫 뒤집기 성공했을 때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다른 부모들도 이런 기분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가 기어 다니면서 내가 집안일을 할 때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내가 어디를 가는지 혹은 집 구석구석 다니기 시작했다.
“어디 가, 아리야? 이리 와.”
아리가 첫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천천히 나에게 걸어오는데 불안하기도 하면서도 기특하기도 했다.
“우리 아리 잘한다.”
“어머, 우리 아리 잘하네! 할머니한테 와 봐.”
마침 어머니께서 집에 반찬을 가지고 오셨을 때 아리의 걸음마를 보시곤 너무 좋아하셨다. 어머니께서는 회사에 계시는 아버지께 보내 주신다면서 동영상을 찍겠다고 하셨다.
“아리야, 걸음마 걸음마.”
“어머니, 있다가 다시 찍으세요. 아리 이제 자야 돼요.”
“어? 벌써 낮잠 잘 시간이구나.”
“네.”
어머니는 아리의 잠든 모습을 보실 때마다 안쓰러워하셨다.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아이를 두고 떠날 수가 있냐며 아내를 미워하시고는 아내가 만약 돌아오겠다고 하면 받아주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아리는 어느덧 세 살이 되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해서 아침에 어린이집에 등원시켜 주면서 아리와 짧은 아침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리야, 오늘도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아.”
“응, 아빠. 아빠도 오늘 힘내.”
“응, 이따가 맛있는 거 사 올게.”
“응.”
아리가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는 회사로 출발하였다. 내 회사와 가까운 어린이집을 찾아 아리가 아플 때를 생각해서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어린이집을 정해 등하원을 같이 했다.
“아리야, 오늘 친구들이랑 어땠어?”
“오늘 친구들이랑 지점토 놀이했어.”
“오, 그랬어?”
“응.”
“또 뭐 했어?”
“선생님하고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았어.”
“와, 재밌었겠다.”
집에 가면서 아리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을 했는지 물어봤다.
그렇게 아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초등학교를 입학하였다. 태어난 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초등학교를 입학하다니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아리, 초등학교 입학한 걸 축하해.”
“응, 아빠.”
“친구들이랑 더 사이좋게 지내야 돼.”
“알겠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낼게.”
“당연하지.”
초등학교 6년 동안 아리는 아무 탈 없이 자라주었다. 청각장애가 있어도 아이들이 아리랑 잘 놀아주었다. 밝고 유쾌한 성격으로 성장해서 그런지 친구들을 금방 사귈 수 있었다. 귀가 안 들린다는 이유로 놀리는 아이들이 종종 있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가 문제였다. 초등학교는 일반학교를 보냈지만 중고등학교도 일반학교를 보낼지 농아학교를 보낼지 고민이었다.
“아리야, 아리는 일반학교 갈래? 아니면 농아학교 갈래?”
“글쎄.”
“아무래도 일반학교 가면 놀림받는 게 심할 거야.”
“아무래도 초등학교랑 다르겠지.”
“그렇지. 아리가 선택해.”
“음, 중학교는 일단 일반 중학교 들어가 보고 고등학교는 그때 결정할게.”
“알았어.”
그렇게 중학교를 입학해 3년이라는 시간을 다녔다. 하지만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는 혹독했다. 한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 있다는 이유로 불량한 학생들이 따돌리기도 했고, 어떨 때는 빵셔틀도 시키기도 했다.
“야, 너 귀 안 들린다며?”
“내 말 소리도 안 들리지?”
“한쪽 귀는 들리거든.”
“야, 어디 말대꾸야? 너 맞고 싶냐?”
“사실을 말한 건데?”
“야, 이년 맞고 싶단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하지 말란다.”
“야, 너 우리 카톡방으로 들어와라”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아리를 단톡방으로 불러 괴롭히기 시작했다.
― 이야, 너 귀 병신이라며??? 키키키
― 병신 아니거든??
― 어디서 말대꾸냐?? 너 내일 맞고 싶어서 까불지???
― 키키키, 야 너 내일 돈 가져와라 키키
― 내가 왜
― 이게 너 진짜 자꾸 쌉친다 키키키
― 너네 학교 선생님하고 우리 아빠한테 다 말씀드릴 거야
― 어쭈 이게
― 야, 저년 간댕이 보소 키키
― 야 귀병신 너는 내일 맞을 각오하고 학교 오는 게 좋을 거야 키키
아이들은 단톡방에서 아리를 힘들게 했다. 학교 할 때는 돈을 뺏고, 하교하고서는 편의점에서 담배까지 사 오라고 시키기까지 했다고 했다. 아리는 결국 나에게 울면서 너무 힘들다고 말하곤 학교를 다니기 싫다고 말했다. 나는 화가 나 당장에 학교로 달려가 이 일을 경찰서랑 학폭위에 알리겠다고 말했고, 결국 불량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아리는 심리 상담도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했었다. 그 사이 얼굴이 많이 밝아지면서 친구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아리는 고등학교를 결국 농아학교로 결정하였다. 수어는 어릴 때부터 학원을 다녀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농아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기숙사를 들어가야 해서 아리하고 3년이라는 시간을 떨어져 살아야 했다. 처음으로 떨어져 사는 거라 많은 걱정들과 불안함이 스쳐 갔다.
“딸, 잘할 수 있어?”
“당연하지, 아빠.”
“아빠는 딸이랑 떨어져 살아서 걱정돼.”
“에이, 아빠 주말에 오는데?”
“딸, 아빠는 언제나 딸 편인 거 알지?”
“응, 아빠.”
아리는 다행히도 농아학교에서 잘 적응해 주었다.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남자친구도 사귀게 되었다고 들었다.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도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딸이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딸이 잘 크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리는 대학교를 한국복지대학교 한국수어교원과에 수시 지원하였다. 한국복지대학교에서 수시 합격이라고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나와 아리는 기뻐하였다.
“아빠, 나 수능 볼래.”
“응? 아리야, 너 수시 원서 통과했는데?”
“그래도 봐 볼래.”
“그래, 네가 보고 싶다면 봐 봐.”
아리는 수능 공부에 매진하였고, 수능 당일 아리를 대리고 수능 시험장으로 향하였다. 수능 시험장에는 많은 부모님들과 응원해 주는 후배들도 있었다.
“아리야, 수능 잘 볼 수 있지?”
“응, 잘 볼 수 있어.”
“화이팅하고.”
다른 집에는 아빠와 엄마가 같이 와서 딸들이나 아들을 응원하고 있었으나, 아리는 나 혼자였다. 아리는 고1 때 자기는 왜 엄마가 없냐고 나에게 물어보기도 했었다. 아리에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아리는 나에게 “아빠 고마워”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대학 수능이 끝나고 아리는 학교에서 남은 수업을 듣고, 학교에 있는 짐을 정리해 집으로 돌아왔다.
― 임아리님 합격입니다.
아리는 대학교를 수시로 합격했고, 파주에서 평택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평택으로 이사를 하려고 했지만, 직장이 파주여서 아리만 학교 근처로 자취방을 얻어 주었다.
“아리야, 밤 늦게 다니지 말고 알았지?”
“알았어.”
“아빠 걱정되니까 하루 한 번씩 전화하고, 응?”
“응, 알았어. 저녁에 통화하면 되지?”
“그래, 그래.”
아리를 평택에 보안이 잘 되어 있는 아파트로 이사 시키고 가전제품도 넣어 주었다.
“집에 남자 함부로 불러들이지 말고 알았어?”
“알겠어.”
“아빠 간다, 딸.”
“응, 아빠 조심히 가.”
딸과 두 번째 떨어져 사는 거지만, 여전히 서운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딸의 집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걸고 잠시 앉아 있었다. 아직 딸아이와 헤어지기 싫었던 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파주까지 가는 시간이 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주차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였다.
집까지 가는 거리는 두 시간에 가까웠다. 강남을 지나 강서구를 거쳐서 일산을 지나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여보세요?”
“딸, 아빠야.”
“아빠 도착했어?”
“응, 방금 도착했어.”
“오래 걸렸네.”
“응, 차가 너무 많이 밀렸어.”
“자고 갈 걸 그랬나 보다, 그치?”
“아빠도 그러고 싶었는데 내일 출근이라 올라와야 됐잖아.”
“다음 주에 주말에 와서 자고 가, 아빠.”
“알았어.”
“아빠 잘 자, 그리고 내일 통화해.”
“응, 딸도 잘 자.”
“응.”
나는 아리와 통화를 마치고 아리의 어릴 적 찍은 앨범을 꺼내 한 장 한 장 들여다보았다. 갓 태어났을 때, 뒤집기 했을 때, 첫 걸음마 했을 때, 유치원 들어갔을 때, 초등학교 입학, 초등학교 졸업,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내 새끼가 언제 이렇게 많이 컸는지 모르겠다. 사진을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아리는 학교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성적도 우수했다. 선배들에게도 예쁨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첫 MT 때는 선배 분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들었다. 1학년 때는 힘들기도 재밌기도 했었다고, 그리고 2학년이 되면서 후배도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동아리 모임도 시작했다고 전해 들었다.
“아빠, 나 이제 동아리 모임 시작했어.”
“어떤 거?”
“음악 동호회인데, 수어로 가사 나가고 노래 부르는 거야. 유튜브로도 나가는 거야.”
“오, 그래?”
“응, 그래서 방과 후에도 조금 바빠.”
“우리 딸 대견하네. 후배들에게 친절하게 잘 알려 주고 알았지?”
“당연하지. 그리고 나도 동아리는 처음이라 배워야 돼.”
“그래도 네가 먼저 학교 들어간 선배니까 후배들에게 많이 가르쳐 줘.”
“알았어.”
아리와의 통화를 마치고 나는 부모님 댁으로 향하였다. 부모님은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셨지만 아들인 나보다 더 건강하셨다.
“어, 아들 왔어.”
“네, 어머니. 저녁 드셨어요?”
“응, 아들. 아리랑은 통화 자주 해?”
“네.”
“어제 아리한테 전화 왔어. 잘 지내시냐고.”
“정말요?”
“응.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시냐고, 그리고 두 분이 식사하시기 적적하시니 아빠 불러서 같이 식사하시라고 그러더라.”
“우리 딸 다 컸네요.”
“너 걱정돼서 그렇잖아.”
“그래요?”
“응. 너 밥 잘 안 챙겨 먹는 것 같다구.”
나는 아리가 있을 때는 아리의 삼시세끼를 챙기기 위해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그런데 아리가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자마자 밥을 챙겨 줄 사람이 없으니 입맛이 없어 하루 한 끼 먹는 게 전부였다. 그걸 아리가 눈치챘었는지 어머니께 따로 전화드린 모양이다.
“아빠, 식사 잘 챙겨 드세요.”
“그래.”
아리는 매일 나에게 식사 챙겨 드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리는 어느덧 대학교 졸업을 하고 바로 취업을 하게 되었고, 처음 통역하게 된 곳이 삼사 방송국이었다. 삼사 방송국을 오가며 수어 통역을 시작하면서 실수도 많았다. 긴장을 너무 해서 틀리기도 많이 틀렸다. 방송으로 보는 나도 조마조마했다. 저러다가 울지 않을지 걱정도 많았다.
“아빠, 나 방송 다 하고 내려오면서 울었어.”
“정말?”
“응.”
“아빠가 보기도 조마조마했어. 너무 긴장하는 것 같았어.”
“처음이라서 너무 긴장하니까 잘하는 것도 다 틀렸어.”
“그래도 잘했어.”
아리는 나하고 전화 통화하면서도 펑펑 울었다. 우는 아리 목소리를 듣는 나도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고작 ‘그만 울어’라는 말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딸, 그만 울어.”
“흑흑, 아빠, 흑.”
“딸, 뚝! 아빠 속상해. 그만 울자, 응?”
“웅, 이제 다 울었어. 아빠랑 통화하니까 속이 시원해.”
“정말이야?”
“응.”
딸아이가 나랑 통화하면서 ‘속이 시원하다’는 말을 하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다. 다른 딸들은 엄마에게 털어놓는데, 아리는 털어놓을 곳이 나뿐이라는 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아리는 1년 차가 되어 가니 제법 능숙해졌다. 처음 긴장해서 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이었다면 이제는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가끔 자신이 틀린 걸 알면 수어로 다시 말해 주기도 했다. 아리가 TV에서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하자, 아리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리아빠.”
“누구세요?”
“나야, 예지.”
“네가 왜 전화했어?”
“나 아리 보고 싶어서.”
이 여자가 왜 전화를 한 거지? 이제 와서 아리가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는 아닐 거 같은데, 불안한 건 내 생각이라고 믿고 싶었다.
“네가 왜 아리를 보고 싶어?”
“나 아리 엄마야.”
“너 잊었어? 어리 태어났을 때 청각장애라는 말 듣고 이혼하자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아리를 보고 싶대?”
“엄마니까 딸 당연히 보고 싶은 거지.”
“너 엄마 자격 없어. 알잖아, 너 친권 포기했다는 거.”
“그건… 그랬지만….”
아리 엄마는 아리의 돈을 보고 접근한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아리를 보고 싶어서 그런 건지 일단은 더 두고 보기로 하고, 아리에게는 말하지 않고 아리 엄마에게 아리는 만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리 만나지 마.”
“왜?”
“너 어떻게 떠났는지 다 알아.”
“그걸 말했어?”
“어.”
“건강하게 잘 컸네 그래도.”
“그렇게 잘 컸는데 네가 두고 간 거잖아.”
“…….”
“가 나타나지 마.”
“…….”
“돈 필요한 거야?”
“아냐, 정말 아리 보고 싶어서 왔어.”
저 여자가 진짜로 아리가 보고 싶어서 왔을까? 정말일까?
“아리, 내가 데려간다는 거 아냐. 그냥 자주 보겠단 거야.”
“그걸 믿으란 거야?”
“지켜보면 되잖아.”
“아리랑 말해볼게.”
사실 믿어지지는 않지만, 아리에게는 엄마니까 아리에게는 물어봐야 할 문제였다. 접근 금지 할 수도 있었지만, 아리는 엄마가 보고 싶었을 수도 있었기에 아리에게 물어보고, 보고 싶지 않다면 두 번 다시 보지 않게 한 번 더 말해보고, 그게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빠, 나왔어.”
“아리 언제 왔어?”
“어디 갔었어? 나 오늘 온다고 했는데.”
“미안, 잠시 나갔다 왔어.”
“나 배고파~”
“오야, 밥 줄게, 딸~”
아리에게 저녁을 챙겨 주고, 아리에게 말을 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딸….”
“응??”
“엄마가 찾아왔어.”
“… 왜?”
“우리 아리 보고 싶대.”
“이제 와서?”
“응, 아리가 결정해. 보고 싶으면 봐도 돼.”
“…….”
“생각해 보고 이야기해 줘.”
“알았어.”
그렇게 아리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으로 들어가버린 아리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고, 며칠 동안 말없이 출퇴근하였다.
“아빠.”
“응?”
“아빠, 나 볼래.”
“이유는?”
“내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아빠와 나를 버려놓고 이제 와서 다시 나와 아빠를 찾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됐어. 사실 내가 TV에 나오니까 찾은 건지, 정말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알고 싶어.”
“그래, 알았어. 아빠가 엄마에게 말할게.”
“응, 알았어.”
딸아이는 그동안 많이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살이 많이 빠져서 안쓰러웠다. 나는 다음 날 아리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말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야.”
“응, 기다렸어.”
“만나자.”
“알았어. 어디서?”
“두 시에 메가커피에서.”
“응.”
그렇게 아리 엄마와 약속을 잡고,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아리는 오늘 외국 출장이 잡혀 있어 새벽부터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였다.
조금 일찍 카페에 도착하여 의자에 앉아 있었다. 혼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한참 고민을 하고 있으니 아리 엄마가 내 앞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 채 말이다.
“벌써 왔네.”
“응.”
“아리가 뭐라고 해?”
“어, 보고는 싶대. 근데 나하고 대답은 같아. 당신이 아리가 TV에 나와서 돈 때문에 찾아온 건지, 정말 아리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건지….”
“뭐….”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자신을 볼 거라고 말은 했지만, TV에 나와서 돈 때문에 자신을 보러 왔다는 말을 했을 거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는지, 순간 말을 하지 못했다.
“나 지켜봐 줘. 아리한테 잘할게. 당신한테는 돌아갈 수는 없지만, 아리한테는 엄마로서 잘할게.”
“알았어.”
“아리는 언제 볼 수 있어?”
“출장 갔어.”
“그렇구나……. 내가 정말 미안해.”
“이제 와서?”
나는 아직 아리 엄마가 용서되지 않았다. 나와 아리를 버리고 간 아리 엄마가 미워 용서할 수 없는데, 그래도 아리의 엄마이니 아리는 엄마가 한 번은 보고 싶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허락은 했으나, 얼굴만 봐도 화가 났다.
“나 갈게.”
“가려고?”
“어, 난 아직 당신 얼굴 보면 화나.”
“그래, 알았어….”
난 그 카페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해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였다. 집으로 향하면서도 아리 엄마를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덧 아리는 해외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에게 엄마를 만나보겠다고 말했고, 나는 아리 엄마에게 아리와 만날 장소를 말해 주고 나와 아리는 카페로 향했다.
“아리야, 꼭 오늘 봐야 하는 거야?”
“응,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래, 알았어.”
아리와 나는 창가 쪽 카페에 앉아 아리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리의 표정은 다른 때와는 달리 차가워 보였다.
“왔어~?”
“어.”
“네가 지아구나.”
“아리야, 지아가 아니고.”
“…….”
“아, 그렇구나.”
“아리야, 여기 계신 분이야. 엄마야.”
“안녕하세요.”
“그래, 태어날 때 보고 처음으로 보는구나, 지아야.”
“…….”
“보고 싶었어.”
아리는 전처가 하는 말을 무시하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나가 계세요.”
“어?”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시 나가 계세요.”
나는 아리가 나가 있으라는 말이 조금 섭섭했지만, 아리와 아리 엄마를 두고 카페 출입문 쪽으로 나가 있었다.
“아빠하고 저한테 나타나지 마세요. 이 말 하려고 나온 거예요.”
“…….”
“태어나자마자 버린 사람 보고 싶지 않아요.”
“…….”
“아빠 혼자 저 이렇게 키웠어요.”
“미안해.”
“그럼 전 이만 드릴 말씀 드렸으니 가볼게요. 아, 그리고 저 지아가 아니고 아리에요.”
“…….”
“태어나서 이름한번 불러보지도 못했으니 내 이름이 아리인지 지아인지 모르시겠죠. 아빠한테 내가 보고 싶다는 연락 안 하셨음 해요.”
“아리야.”
“정말 가볼게요.”
아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에게 인사를 한 뒤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빠에게로 달려가 아빠를 불렀다.
“아빠!”
“응? 벌써 이야기 다 한 거야?”
“응, 다시 보지 말자 했어.”
“정말?”
“응.”
아리는 날 생각해서 그 말을 했는지, 엄마가 미워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을 꺼내기까지 엄청난 고민을 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리는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고 이번에는 긴 해외 통역이었기에 한참 동안 아리와는 메일과 영상 통화만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외 통역을 갔던 아리가 돌아왔고 나에게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어, 우리 딸.”
“아빠, 아빠!”
“왜, 왜?”
“있잖아, 나 앞으로 해외 수어 통역사로 발령받았다~~~”
“어~~???”
“잘됐지?”
“출장으로 다니는 게 아니라?”
“응, 앞으로 해외 통역사로 자주 다닐 것 같아.”
“축하해, 딸! 더 보기 힘들겠다.”
“응, 집에는 자주 못 올 거야.”
“아빠, 우리 아리 보고 싶어서 어째.”
“영상 통화랑 메일하면 되지.”
“그래, 알았어.”
“응, 그리고 아빠도 이제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으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해. 나 다 키워놨는데, 하고 싶은 거 해.”
“알았어, 찾아볼게.”
“응, 응원할게 아빠.”
아리는 해외 통역사로 바쁘게 생활하면서 나에게 늘 영상 통화를 해왔다. 잊어버린 날에는 미안하다고 바빠서 못했다고 말했고,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이야기해 주었다.
“아빠, 잘 있는 거지?”
“응, 잘 지내지.”
“뭐 하고 지내?”
“아빠는 잘 지내. 요즘 카페 일하면서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비장애인, 지적장애인 바리스타 양성 교육하고 있어.”
“응? 청각장애인은 어떻게 바리스타 해?”
“청각장애인은 무인 카페로 하면 커피는 내려줄 수 있으니까. 비장애인이 매니저로 해서 같이 일하는 걸로 하는 거지.”
“오, 좋다. 울 딸도 잘 지내지?”
“응, 여기서 일 안 할 때는 구경도 하고 수영도 하고 그래.”
“오, 그렇구나. 구경 잘하고 수영할 때 조심해, 알았지?”
“응, 알았어.”
“그래, 우리 아리 보고 싶다.”
“아, 참! 나 다음 주 귀국해.”
“그래? 그럼 다음 주에 온다면 아빠가 아리 맛있는 거 해줘야지.”
“오, 진짜 기대된다! 기다리고 있어 아빠.”
“그래, 얼른 와 딸래미.”
다음 주 아리를 데리러 가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던 나는 차를 세차까지 하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도 조수석 옆에 놓아두었다.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는 내내 아리랑 무엇을 만들어 먹을지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던 중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에서 커피 두 잔을 사고 다시 공항으로 출발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아리가 나오는 출구로 시선을 옮겼다. 곧 아리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아리가 많이 타지는 않았을지 걱정도 되었다. 저 멀리서 아리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
“아리야~”
“잘 있었어?”
“아리는 잘 있었어?”
“그럼 잘 있었지.”
“어디 보자, 조금 탔는데?”
“그럼 바다에 있었으니까. 어, 아빠는 그새 또 살이 빠졌다?”
“아닌데?”
“맞는데.”
아리와 나는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맞네”, “아니네”를 반복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저녁 뭐 해줄까?”
“사 먹자, 오늘은.”
“아니야, 아빠가 해줘야지.”
“오늘만 사 먹자.”
“뭐 먹고 싶은데?”
“음…. 마라탕.”
“그거 아빠는 못 먹는데.”
“그러네. 그럼 아귀찜, 그것도 좋아.”
“그래요, 아가씨. 갑시다.”
“와, 간식!!”
차에 타자마자 간식이 놓여져 있는 걸 본 아리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와, 얼마 만에 먹는 간식이야.”
“밥 먹고 드십시요.”
“네~”
식당에서 아귀찜을 먹으면서도 아리는 나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왔다.
“아빠 많이 먹어, 팍팍!”
“알았어.”
“그래, 그렇게 드세요, 아빠.”
“집에 가다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드리자.”
“응, 알았어.”
“할아버지는 병원에 계셔.”
“많이 편찮으셔?”
“응, 너 보고 싶어 해.”
“집 가면서 뵙고 가자.”
“그래.”
나와 아리는 집에 가는 길에도 이야기를 계속하였고, 어머니께 미리 오늘 아리가 온다고 이야기를 드려 놓았기 때문에 기다리고 계셨다.
“아이구, 내 새끼 아리야.”
“할머니!”
“아이구, 잘 다녀왔어?”
“웅.”
“어디 보자, 더 예뻐졌네, 내 새끼.”
“아이, 할머니도.”
“똥강아지, 밥은?”
“먹었어요.”
“그래, 잘했어.”
“어머니, 지금 아버지께 가려고요.”
“그래? 그럼 나도 같이 가자.”
“그러세요.”
나와 아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를 만나 뵙기 위해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아버지께서는 나도 어머니도 못 알아보셨지만, 아직 아리는 알아보셨다.
“아이구, 내 강아지.”
“할아버지!”
“잘 있었어?”
“웅, 잘 다녀왔어요.”
“나 비행기 타고 통역해주고 왔어요.”
“잘 다녀왔어?”
“웅, 많이 편찮으셔요?”
“괜찮아.”
“얼른 나으셔요.”
아버지는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셨고, 어머니는 오전 오후 나와 함께 아버지의 면회를 함께 가자 하셨다. 갈 때마다 어머니는 알아보지만 매번 나는 누구냐고 물어보셨고, 다행히 아직 아리는 기억하신 상태였다. 그런 아리가 할아버지를 보러 면회를 왔으니 얼마나 반가우셨을지 나는 알고 있다. 아버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아리와 이야기하셨다.
“오야.”
“아버지, 식사 맛있게 드시고 약 잘 드세요.”
“누구여?”
“아들.”
“…….”
“갈게요.”
“할아버지, 손녀 갈게요.”
“똥강아지, 잘 가.”
나, 그리고 어머니, 아리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어머니를 뒷좌석에 태워드리고 안전벨트까지 매드렸다. 아리는 어느덧 조수석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엄마, 불편하지 않으시지?”
“응.”
“출발할게요.”
“응.”
시동을 걸고 막 출발을 했을 때였다. 어머니께서 아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리야, 너 단 거 먹지 마.”
“할머니, 맛있어요.”
“이 아퍼.”
“조금만 먹을게요.”
아리의 대답을 들으시곤 집에 도착한 어머니는 잠을 주무시러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다음 날, 나는 아리가 자고 있을 때 어머니 댁으로 향하였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가니 조용했다. 난 안방문 앞에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주무세요?”
“…….”
“어머니?”
안방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머니 앞으로 가 어머니를 깨우기 시작했다.
“어머니….”
“…….”
“엄마.”
“…….”
“엄마!!!”
숨을 쉬고 계시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대원 분들이 집으로 들어와 어머니를 병원으로 이송하며 말했다.
“환자분은 이미 운명하셨습니다.”
“흑흑.”
“지병이 있으셨나요?”
“아니요….”
“그럼 최근에 충격받으신 일 있으셨나요?”
“없었습니다.”
“어서 다른 가족 분들 병원으로 오시라고 전화하시죠.”
나는 아리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한 뒤 구급차에서 내렸고 어머니는 안치실로 향하였고, 나는 장례 준비를 시작했다. 장례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 아리가 뛰어오면서 나를 불렀다.
“아빠~!!”
“어, 아리야.”
“어떻게…. 갑자기 돌아가셔….”
“그러게 말이야…….”
“할머니…….”
“가서 상복으로 갈아입어.”
“응, 알았어.”
아버지보다 어머니께서 먼저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어머니의 삼일장을 무사히 마치고, 얼마 후 아버지께서 위독하다는 연락이 와 병원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또다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고, 삼일 동안 어머니의 지인들과 아버지의 지인 분들이 많이 와주셨다. 향을 꽂아주시고 삼배를 올리고 상주에게 인사를 올린 뒤, 어머니의 친구 분이 나에게 다가와 말씀하셨다.
“어떻게 몇 달도 안 돼서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 세상에나.”
“…….”
“아들하고 손녀 걱정돼서 편히 가실 수나 있으실 란가 모르겠네.”
“이제 아리도 다 컸으니 편안하게 가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런가.”
아버지의 장례식과 발인은 모두 무사히 마쳤고, 며칠이 지나 아리는 다시 해외로 떠나야 했다. 아리는 방으로 들어가 캐리어에 짐을 정리하고 있었고, 나는 아쉬운 마음에 아리 방으로 가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아리가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울 아빠 혼자 계셔야 하네.”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나 다시 해외로 떠나는데?”
“응. 너 전에 해외 가도 늘 혼자였는데?”
“그때는 할머니, 할아버지 계셨지만 지금은 아빠 혼자잖아.”
나는 아리를 꼭 안아주며 안심시키듯 말해주었다.
“아빠도 성인이고, 혼자 살 나이거든? 그리고 아직은 튼튼해.”
“걱정되니까 그렇지.”
“해외 가서도 많이 통화하잖아. 걱정도 참….”
다음 날, 나는 아리를 공항까지 태워다주었다. 입국 장소에서 아리와 마지막 포옹을 하고 인사를 했다.
“아리야, 다치지 말고 잘 다녀와.”
“응, 알았어. 아빠도 밥 잘 챙겨 먹고, 알았지?”
“알았어.”
딸이 해외로 간 지 3년이 지났을 때였다. 한참 한국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 아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어, 아리야.”
“잘 지내고 계시죠?”
“그럼.”
“나 이제 며칠 뒤에 귀국합니다.”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응.”
나와 아리는 다시 재회하였고, 아리는 사윗감이라면서 한국 재미교포를 소개시켜주었다. 신혼은 외국에서 보내지만 내가 한국에 있으니 자주 한국에 들어온다고 말은 해주었다. 예비사위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고맙네.”
그렇게 아리는 무사히 결혼을 하고 나는 서울에서 내가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 지냈고, 아리는 아리 나름대로 통역일과 가정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 해당 글은 2025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교육생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