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16 작성자 아이**04 등록일 2026-07-24 좋아요 0
도서명2026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빛이 될 때
저자권희정, 김영락, 민경, 수연, 안시아, 엄다솜, 이민혁, 정솔,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여덟 번의 죽을 고비
#1
“곧 태어날 아이는 20살 전에 죽을 고비를 많이 겪을 겁니다. 만약 스무 살 전에 죽을 고비를 못 넘긴다면 그 아이는 사주대로 죽을 운명입니다.”
한 스님이 불공드리는 묵호댁이라 불리는 중년의 한 여성의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묵호댁의 외손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 묵호댁의 딸은 어렵사리 얻은 아기였지만 임신중독증으로 딸도 아기도 위험했다. 아기와 산모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묵호댁과 사위는 어렵사리 얻은 아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수술실로 들어간지 얼마 안되어 아기의 울음소리가 온 병원에 퍼졌다.
묵호댁과 사위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를 보자마자 묵호댁은 다급히 말했다.
“우리 딸은 어찌 됐나요? 애 울음소리가 나던데.”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술하려 준비하는 도중 아기가 워낙 작아서 자연분만으로 나왔어요. 다행히 산모님도 건강하고 아기는 워낙 작아서 인큐베이터에서 좀 지켜는 봐야 하지만 건강은 양호한 상태로 보입니다.”
그렇게 묵호댁의 첫 손녀는 첫 죽을 고비를 넘기고 1.5㎏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을 깨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이가 태어난지 두 달쯤 구정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묵호댁의 남편은 49세의 나이로 퇴근길에 눈에 홀려 산으로 올라가다 눈밭에서 잠들어 동사를 했다.
묵호댁은 앞이 깜깜했다. 막내아들은 이제 고작 6살이었고 첫 손녀딸은 이제 겨우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상황이었다. 산후조리로 딸이 손녀와 구정설에 맞춰 내려온다고 말한 다음날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인가.
우선 묵호댁은 인천에 사는 사위에게 연락을 했다.
6남매 중 첫 사위이고 묵호댁과 그의 남편도 큰아들마냥 의지하는 사위였기에 의논을 할 사람은 큰사위밖에 없었다.
“김서방. 놀라지 말고 듣게. 미숙이 아버지가 오늘 새벽 하늘로 갔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님이 갑자기 왜?”
“우선 미숙이는 몸조리를 해야 하고 아기도 갓 태어나서 초상집 오는 게 아니니 미숙이에게는 말하지 말고 자네만 출장간다고 핑계 대고 와줄 수 없겠나?”
“알겠습니다. 장모님. 야간 우등 타고 내려가겠습니다.”
그렇게 묵호댁 전화를 받은 사위는 부랴부랴 출장 가는 것처럼 짐을 챙겨 처가인 강원도로 내려갔다.
3일을 상주 노릇을 하며 묵호댁과 어린 처남 처제를 잘 다독이며 무사히 상을 잘 치루고 묵호댁은 사위와 늘 불공을 드렸던 절에 올라갔다.
아이 이름도 지어야 했고 상을 치뤘으니 남편 명복도 빌겸 사위가 서울 본가로 가기 전 같이 동행을 했다.
두 달 전 묵호댁이 불공을 드릴때 지나가며 손녀딸 운명을 말해 준 스님을 그날도 우연히 만났다.
묵호댁은 스님을 보며 반가운 마음에 합장을 하며 말했다.
“스님. 우리 첫 손녀가 부처님 덕에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스님도 묵호댁을 보며 합장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다 불자님의 기도 덕이지요. 그런데.”
스님은 말끝을 흐리며 묵호댁과 사위를 지그시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어 나갔다.
“왜 그러시는지요?”
묵호댁은 조심히 스님을 보며 되물었다.
“옷차림을 보니, 혹시 누가 돌아가셨는지요?”
그제야 묵호댁과 사위는 상복을 입은 걸 깨달았다.
묵호댁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예, 스님. 3일 전에 제 남편이 하늘로 갔어요. 황망하게.”
스님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지며 한숨을 쉬며 어렵게 입을 뗐다.
“이런 얘기 드리기가 좀 그렇지만 그래도 말씀을 드려야 하겠지요. 시간이 되시면 잠시 법당으로 들어오시겠어요?”
묵호댁과 사위는 서로 바라보며 스님에게 홀리듯 스님 뒤를 따랐다.
법당에 들어가서 작은 방에 앉은 묵호댁과 사위는 스님이 따라주는 차를 받아 그저 손에서만 만지작거리며 스님만 빤히 쳐다보았다. 스님은 그저 따뜻한 차를 마시기만 했다. 그 길지도 짧지도 않는 정적을 깬것은 사위였다.
“저, 스님. 저희에게 하실 말씀이라는게 뭘까요?”
묵호댁 역시 스님이 무슨 말이라도 빨리 하기를 바라며 스님을 빤히 쳐다봤다.
그제야 스님은 찻잔을 찻상에 내려 놓으며 힘들게 입을 뗐다.
“제가 하는 말을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허투루 듣지 마십시오.”
묵호댁과 사위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혹시 아이의 생일과 태어난 시를 알 수 있을까요?”
“12월 25일생이고 낮 정오에 태어났어요.”
사위가 조심스레 말을 했다.
스님은 눈을 감고 염주를 돌리며 뭐라뭐라 중얼거리셨다.
묵호댁과 사위는 조용히 스님만 바라보았다. 조금 뒤, 스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에 제가 손녀딸은 20살 전에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길거라 말씀드렸죠? 스무살 전에 그 고비를 못 넘기면 20살 전에 죽을 수도 있다고 한 말 기억하시나요? 불자님.”
“네, 그럼요. 우리 딸이 임신중독증으로 많이 위험해서 딸과 손녀 중 하나만 포기하라해서 어렵게 얻은 아기지만 아기를 포기했는데, 워낙 작아서 아이가 수술 준비중 자연분만으로 태어났어요. 그때 심정은.”
묵호댁은 그때가 생각이 나는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다행히 손녀딸은 첫 죽을 고비를 넘긴겁니다. 다만, 손녀딸이 태어나서 집안에 어른 둘이 1년 사이 돌아가시게 될 겁니다.”
묵호댁과 사위는 뒤통수를 맞은듯 얼어붙었다.
묵호댁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고 사위는 눈이 휘둥그레져 스님을 뚫을 기세로 바라보았다.
“제 말에 놀라신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손녀딸 사주가 그렇습니다. 손녀딸이 첫 죽을 고비를 넘겨서 불자님의 남편분이 하늘에 부르심을 받은 겁니다. 그 또한 하늘의 뜻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갑자기 사위는 화가 잔뜩 난 듯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장모님! 가시죠! 이런 말 듣지 마세요.”
사위는 묵호댁의 팔을 잡아당겼다.
묵호댁은 아직도 믿기지 않은 듯,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위는 그런 묵호댁을 남겨두고 법당을 나가버렸다.
적막함이 얼마나 흘렀을까?
묵호댁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조심스레 말을 했다.
“그럼 스님. 저희가 뭘 해야 됩니까? 굿이라도 해야 할까요? 아니면 부적을 써야 할까요?”
묵호댁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만 계속 흘렀다.
스님은 그런 묵호댁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자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사람의 사주는 타고나는 겁니다. 운명을 거슬리면 큰 화가 닥칩니다. 그저 운명이라 생각하시고 제가 일러주는 대로 하시면 손녀딸도 불자님의 집안도 평안할 겁니다.”
묵호댁은 그저 애절하게 스님만 바라보며 스님이 무얼 말할지 가슴만 졸이고 있었다.
“우선 손녀딸 이름을 지어드리겠습니다. 그 이름이 손녀딸을 지켜줄 겁니다.”
묵호댁은 그저 손을 모으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하늘 천 자에 공경할 경 ‘천경, 하늘을 공경하라’라는 뜻입니다.”
스님은 이름을 잘 적어 묵호댁에게 내밀고 작은 부적 하나도 적어 주었다.
“이 부적은 꼭 아이가 20살 전까지 지니게 하세요.. 아이를 지켜줄 겁니다.”
묵호댁은 두 종이를 받아 들고 그저 스님에게 감사하다고 머리를 몇 번을 조아리며 말했다.
“제가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런지요. 혹시 제가 조금이나마 얼마를 시주를 해야 할런지.”
“시주는 괜찮습니다. 손녀딸에게 제가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십시오.”
“그래도 이런 건 공짜로 받는 게 아니라 했어요. 다만 얼마라도.”
묵호댁은 호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내는데 스님은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 마음이 그러시다면 절에 가족등 하나 달고 가십시오. 제가 불자님 가족을 위해 기도 많이 하겠습니다.”
묵호댁은 합장을 하며 거듭 감사하다고 말하고 스님 말씀처럼 가족등을 달고 절을 내려왔다.
절을 내려오는 동안 김서방과 묵호댁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깬 건 묵호댁이었다.
“김서방, 아기 이름을 스님이 지어 주셨네. 하늘 천에 공경할 경, 천경이래. ‘김천경’ 이름 이쁘지? 하늘을 공경하며 살아라라는 뜻이라네.”
하지만 김서방은 묵호댁 말을 듣는건지 마는건지 묵묵부답이었다. 화가 나 있는 건지, 깊은 생각에 빠진건지, 그저 앞만 보고 산길을 내려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런 사위의 모습을 보며 묵호댁 역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네가 뭔 걱정을 하는지 아네. 우리 손녀딸이 태어나서 집안에 사람이 둘이나 죽는다는 말, 나도 믿기지는 않지만 결국 미숙 아버지가 허망하게 간 걸 보면 또 그 말을 무시할 수도 없지 않나.”
“장모님!”
사위는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묵호댁을 바라봤다.
하지만 사위는 입만 달싹일 뿐 말을 잇지 못했다.
묵호댁은 그런 사위의 말을 기다리기로 했다. 보채지 않고.
“아까 절에서 들은 얘기는 장모님과 저만 비밀로 하시지요. 미숙이가 알아봤자 좋을 게 없고 또 아버님 돌아가신 것도 아직 미숙이는 모르니 구정설에 맞춰 어머님이 막내 처남과 저희집으로 오시는 게 어떨까요? 우선 아기 백일이라도 지나서 아버님 얘기는 하는 걸로 하구요.”
“그러세. 몸조리하고 있는 애가 알아서 뭐 좋을 게 있나. 내가 구정 설 쇠고 올라가겠네. 김서방은 먼저 올라가 있게.”
그렇게 묵호댁과 김서방은 둘만의 비밀이 생겼다.
김서방은 집에 도착 전 묵호댁이 챙겨준 팥과 소금을 자기 옷과 짐가방에 뿌렸다.
그러고는 출장 다녀온 것처럼 “미숙아! 나 다녀왔어!”하며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2
그렇게 아무 일도 없듯이 천경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작지만 건강히 잘 자라고 있었다.
일주일 후면 천경이의 돌잔치라 천경이네 집은 분주했다.
천경이는 묵호댁에게는 첫 손녀딸이었지만 사위 집에서는 쉰둥이로 얻은 막내아들의 손녀이기에 두 집안에서는 귀한 아기였다.
팔순이 가까운 천경이 친할머니는 막내아들의 첫딸 돌잔치에 온다고 한 달 전부터 손녀 돌 준비하느라 바쁘셨다.
떡이랑 음식을 직접 해 오신다고 매일 전화를 하시며 막내아들 내외와 손녀딸 안부를 아침 저녁으로 물으셨다.
그러던 중 천경이 돌잔치 3일을 앞두고 묵호댁은 사위의 전화를 받고 스님의 말이 떠올라 손이 덜덜 떨렸다.
천경이 친할머니가 이틀 전부터 배가 살살 아프다 하시더니 천경이 돌잔치 3일을 남겨둔 오늘 주무시듯이 하늘로 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다행히 손녀딸은 첫 죽을 고비를 넘긴겁니다. 다만, 손녀딸이 태어나서 집안에 어른 둘이 1년 사이 돌아가시게 될 겁니다.”
스님이 말한대로 집안의 어른 둘. 열 달 전 묵호댁 남편, 그리고 열 달 후 천경이 친할머니. 1년 사이 집안의 어른 둘은 하늘로 가셨다.
천경이 엄마 미숙 씨는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개월 후에 6살짜리 막냇동생이 말해서 알았다. 묵호댁에게 미숙씬 왜 자기에게 말을 안했냐고 원망을 토해냈지만 아기 낳은 지 얼마 안 된 딸에게 어찌 그런 일을 전하냐고,
더욱이 객사해서 돌아가신 것을 어찌 말하냐고 묵호댁은 미숙 씨에게 울며 말했었다.
미숙 씨는 그런 묵호댁 마음이 이해가 됐다.
미숙 씨도 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의 마음이 뭔지를 알았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린지 얼마 안됐는데 막내 며느리라고 이뻐해주시던 시어머니 마저 딸래미 돌 때 바리바리 싸오신다고 약속을 하시고는 오시지 못하고 하늘로 가시다니, 일 년에 상을 두 번이나 당할 수 있는지 현실감이 없어졌다.
아기가 돌도 안 됐으니 아기를 데리고 시어머니 뵈러 갈 수 없어 친정인 묵호에 들러 천경이를 맞기고 천경이 엄마, 아빠는 천경이 아빠 고향인 양양으로 상을 치르러 내려갔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천경이는 첫 돌잔치를 할 수 없었다.
그러고 1년 후, 천경이 두 돌날,
첫돌은 못해 두 돌이라도 해주자 싶어 가족들은 묵호댁집에서 두 돌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유독 천경이는 외갓댁에 오면 이상하게 늘 아팠다. 집에서는 감기도 안 걸리던 천경이가 외갓집만 가면 감기가 걸리거나 체하거나 장염이 걸리는 등 늘 아팠다.
두 돌 준비로 바쁜 어른들을 대신해서 나이 어린 외삼촌들이 천경이를 돌보다 천경이가 하도 칭얼거리니 절편 하나를 천경이한테 주었다.
그것이 화근이 됐는지 절편을 먹고 천경이는 급체를 했는지 급기야 열이 오르더니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놀란 어린 외삼촌들은 어른들께 말했고 천경이는 경기로 인해 눈은 사시로 돌아가 있고 이마에 열은 펄펄 끓고 천경이 사지는 뒤틀려 있었다.
어른들은 병원을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데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그때 천경이 두 돌 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절에서 내려오신 스님이 그 광경을 보았다. 스님은 천경이를 들쳐업고 묵호댁 집으로 달려갔다. 가자마자 천경이 옷을 다 벗기고 묵호댁에게 대바늘을 달라 하여 대바늘로 천경이의 인중과 손가락, 발가락 모두 피를 냈다.
그제야 천경이는 울음을 토해냈고 뒤틀린 사지는 점점 돌아오고 입에서는 절편 덩어리들이 나오며 다 토해냈다. 하지만 경기로 인해 돌아간 왼쪽 눈은 사시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천경이는 숨 쉬는게 편해지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스님은 안도하며 묵호댁만 남으라 하고 다른 가족들을 내보내고 말을 이어나갔다.
“천경이가 두 번째 죽을 고비를 넘겼네요. 천경이가 20살 전까지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길지는 모르나 오늘 그 두 번째 고비는 무사히 넘긴 것 같습니다.”
묵호댁은 울며 스님 손을 꼭 잡고서 이렇게 말했다.
“스님. 감사합니다. 오늘 스님 아니었으면 우리 천경이는 어찌 됐을지.”
“아닙니다. 천경이가 살려는 의지가 강한 아이여서 요번에도 무사히 넘긴 겁니다. 천경이를 믿으세요.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이렇게 천경이는 두 돌 날, 또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다음 해, 천경이의 사시눈이 신경이 쓰인 천경 아빠는 미숙 씨와 상의 후 유명한 안과를 찾았다.
사시 수술을 어릴 때 해야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안과 상담을 하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은 사시 수술도 해야 하지만 천경이는 선천성 백내장인 듯하다며 사시 수술을 하면서 백내장 수술도 같이 해야 한다고 했다.
미숙씬 아직 어리니 사시 수술만 하자하고 천경 아빠는 지금 같이 수술하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다.
미숙씬 내키지는 않지만 의사쌤도 남편도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좋다 하니 수술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세 살배기 천경이는 여린 몸으로 수술대 위에 올려졌다.
아직 아기이기에 전신마취를 해야 했고 간단한 수술이어도 아기가 잘 견딜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천경 아빠는 수술 확인서에 서명을 했고 그렇게 자그마한 딸을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미숙 씨는 왠지 불안하기만 했다.
더 커서 할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제발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나오기만을 빌었다.
천경이가 수술실로 들어간 지 30분 됐을까 갑자기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분주했다.
미숙 씨는 넘 불안해서 수술실에서 부랴부랴 나오는 간호사를 붙들고 물었다.
“저, 저기 우리 아기 뭔일 있는 거 아니죠?”
간호사는 뭔가 바쁜지 천경 엄마 말을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성의 없이 말했다.
“어머니 저기 의자에 앉아계세요. 지금은 뭐라 말씀드릴 수 없어요.”
간호사는 종종 걸음으로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미숙 씨는 불안한 마음에 수술실 밖을 서성이지만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천경 아빠는 그런 미숙 씨를 보더니 미숙 씨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좀 앉아 있어. 그런다고 수술이 빨리 끝나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따뜻한 차라도 사 올 테니 좀 앉아 있어.”
천경 아빠는 그렇게 병원 밖으로 나갔다.
천경 아빠가 나가고 얼마 뒤, 수술실에서 간호사가 나오더니 다급하게 불렀다.
“김천경 아기 보호자분!”
천경 엄마 미숙씬 가슴 쿵 내려 앉았다. 손이 떨리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저, 제가 보호자인데요. 우리 천경이 뭔 일 있나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미숙씬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어서 동의서가 필요합니다.”
“그게 뭔데요? 그래서 울 아기는 심각한가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으니 우선 여기에 서명 좀 부탁드려요.”
미숙씬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호사가 내민 종이에 서명을 했다.
그러고 종이를 든 간호사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미숙씬 이게 뭔 일인지 자기가 뭘 사인을 했는지조차 모르게 멍하니 넋이 나간 채 앉아 있었다.
그 사이 천경 아빠는 따뜻한 율무차를 가지고 와서 미숙 씨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미숙씬 율무차를 받지도 못하고 손만 덜덜 떨고 있었다.
“왜? 뭔 일 있어? 미숙아! 천경 엄마!”
천경 아빠는 미숙 씨 어깨를 흔들었다.
미숙씬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펑펑 울며 천경 아빠에게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길했다.
천경 아빠 역시 미숙 씨 말을 듣고 넋이 나간 듯 서 있었다.
스님 말이 생각이 나서였다. 하지만 미숙씬 우리 천경이 사주를 모른다. 이것이 스님이 말힌 우리 천경이의 세 번째 죽을 고비인가. 이렇게 죽을 고비가 일 년에 한 번씩 온다는 말인가.
천경 아빠는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게 수술실로 들어간 천경인 두 시간 만에 눈에는 붕대를 감고 산소호흡기를 달고 수술실에서 나왔다.
“수술 도중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서 약간 위험했습니다. 아기이다 보니 아직 어려서 일시적인 현상일수도 있으니 하루 정도 중환자실에서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왼쪽 눈 수술은 성공적입니다. 요번에는 한쪽만 했으니 조금 회복되면 한쪽 눈도 하면 될듯합니다. 오른쪽에도 백내장끼가 있어서요.”
의사는 덤덤히 말하고 자리를 떴다.
천경이 엄마 아빤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자그마한 아이의 몸에 뭔 기계들이 저리 많이 달려있는지, 그것이 애처로울 따름이었다. 중환자실에서 하루 지켜보자던 의사 말은 3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반 병실로 천경이는 옮겨졌다.
미숙씬 3일 동안 잠도 못 자고 면회시간 딱 한 번이 오기를 기다리며 3일 밤을 샜고, 천경 아빠는 장모님께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묵호댁은 사위에게 천경이가 중환자실에 있단 말에 절에 올라가 3일을 불공을 드렸다.
묵호댁이 불공을 드리는 모습을 본 스님은 조용히 묵호댁 앞으로 와서 같이 불공을 드려 주었다.
천경이가 일반병실로 옮겼다는 말을 듣고 묵호댁은 그제야 불공 드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절을 내려가기 전 스님에게 말했다.
“우리 천경이 세 번째 죽을 고비를 잘 넘긴 거겠지요?”
“불자님 기도가 하늘에 닿아 요번에도 천경이가 잘 이겨낸 겁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묵호댁은 합장을 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렇게 해마다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말씀인가요? 그럼 가슴 졸여하는 날들이 아직도 열댓 번이 남았단 말씀인가요?”
“세 번의 큰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매년 죽을 고비가 오겠습니까? 스무 살 전에 몇 번은 오겠지만 지금처럼 매년은 아닐겝니다. 불자님이 이리 기도를 열심히 하시니 하늘에 그 기도가 닿았을 겁니다.”
그랬다. 묵호댁은 손녀 천경이가 태어나서부터 하루에 한 번 늘 불공을 드리러 절에 왔었다.
108배도 하고 삼천배도 하며 자기 무릎이 나갈지언정 손녀딸을 위해 묵호댁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불공을 드렸다.
#3
천경이가 6살쯤 유치원 여름방학 때 바다가 있는 강원도 외갓댁에 놀러왔다. 늘 여름이면 바다 보러 오고 겨울이면 눈썰매타러 외갓댁에 방문을 했다.
그것이 서울 사는 천경이의 유일한 재미였다.
하지만 외갓댁에 오면 늘 아팠다. 그건 아기때부터 그랬다.
먹기만 하면 체하고 감기는 외갓댁 있을 땐 늘 걸려 있었다.
천경이가 좋아하는 외할머니표 삶은 옥수수와 감자부침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여름방학 내내 이 두 음식만으로도 삼시세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지만 꼭 저녁이 되면 체해서 손을 따고 토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천경이는 외갓댁이 좋았다. 잘 놀아주는 외삼촌과 이쁜 옷과 머리핀 그리고 목걸이를 사주는 이모들이 있기 때문이다.
천경이의 목에는 네모난 펜던트 목걸이가 늘 있었다. 이것도 막내 이모가 5살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다.
그 펜던트 안에 노란 종이를 넣어주며 묵호댁이 말했다.
“우리 천경이 지켜주는 수호신이니 빼면 안돼.”
천경이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목걸이가 이쁘니 잘 때도 늘 메고 잤다.
묵호댁은 미숙 씨에게 천경이가 건강히 자라라고 스님이 주신 거라 했다. 이름과 함께 준 부적은 천경이가 아기였을 땐 천경이 베게 안에 넣어주다 작년 생일에 천경이 막내 이모가 선물로 준 펜던트에 부적을 넣어 천경이가 늘 지니게 했다.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 후로는 잔병치레만 있었을 뿐 큰 고비는 없었다. 스님 말씀처럼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무사히 넘겨서 그런지 매년 그 고비는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서울 집으로 올라가기 전날, 천경이에게 네 번째 죽을 고비가 닥치고 말았다.
어린 외삼촌 둘이 다투다 낡은 장롱문이 떨어졌고, 그 밑에 있던 천경이가 깔리고 말았다.
장롱문에 깔리며 뒤로 넘어지다 선풍기 모서리에 머리까지 찧은 천경이는 119를 타고 강릉 시내 대학병원으로 실려갔다.
머리 뒤는 선풍기 모서리에 부딪쳐 찢어진 상태고 장롱문이 덮치며 얼굴에 맞아 앞니 두 개가 부러졌다. 앞니 두 개가 영구치가 아닌 유치여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천경 엄마는 3년 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니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왜 이런 일이 자꾸 우리 천경이에게 일어나는지 천경 엄마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묵호댁과 천경 아빠는 스님에게 들은 얘기가 있으니 요번에도 천경이가 자기 운명의 고비를 잘 넘겼다는 것에 안도했다. 응급실에 있는 천경이는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머리와 얼굴에 피가 묻어 실려와 응급 조치 중이었다.
선풍기 모서리에 부딪친 머리는 7바늘이나 꿰맸고 앞니 두 개 빠진 입에는 솜이 물려져 있지만 피가 멈추질 않았다. 갑자기 또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이었을까? 천경이는 또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했다.
묵호댁은 어차피 보호자 셋이 있어봤자 속만 시끄럽다며 절에 가서 기도나 해야겠다고 천경이 부모만 중환자실에 남겨두고 절로 올라갔다.
그래도 태어나서 일 년에 한 번씩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보다는 3년 만에 다시 이 고비가 찾아오니 잊고 지냈던 천경이의 운명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고비를 또 몇 번을 거쳐야 할지는 미지수였다.
묵호댁은 백팔배를 들이며 이 고비가 마지막이길 바랬다.
기도를 마친 묵호댁이 법당에서 나와 무릎을 주무르고 있는데 스님이 조용히 합장을 하며 다가오셨다.
“불자님. 혹 또 손녀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요?”
묵호댁은 무릎을 매만지며 말했다.
“오늘 우리 아들내미들이 싸우다 장롱문이 떨어졌는데 그 밑에 천경이가 있다가 그만 장롱문에 깔려서 응급실에 갔답니다. 어린 게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또 산소호흡기 달고 중환자실에 들어갔네요.”
“천경이는 강한 아이니 요번에도 잘 이겨낼 겁니다.”
묵호댁은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3년을 잘 지낸다 했더니 내일 서울로 가야 하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겨버렸네요. 이런 고비가 언제나 끝나려는지.”
스님은 그런 묵호댁을 보며 말했다.
“이 고비들은 나이가 들수록 텀이 길어질테니 너무 걱정 마십시요.”
묵호댁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또 넘겨야 할진 모르지만 오늘 네 번째 고비를 우리 천경이가 잘 견디기를 바랄 뿐이다.
절에서 내려 온 묵호댁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둘째 아들과 막내아들을 혼내기 시작했다.
“중학생 형이나 초등학생이나 어찌 그리 똑같아서는, 조카 앞에서 쌈박질이나 하고 조카를 다치게 해!”
천경이 외삼촌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너네 둘! 내일이라도 절에 가서 백팔배 드리고 와!”
불심이 강한 묵호댁은 아들들에게 엄포를 내렸다.
천경이 외삼촌들은 입이 쭉 나와서 투덜대며 말을 했다.
“차라리 엄마 그냥 우릴 때리세요. 백팔배하다 무릎 다 나가요.”
묵호댁은 단호했다.
“삼천배가 아닌거에 감사들 해! 천경이 니들 장난해 지금 중환자실에 있어. 이 철없는 녀석들아!”
묵호댁 아들들은 갑자기 놀란 토끼눈이 됐다.
“그렇게까지 큰일인 줄 몰랐는데, 그냥 조금 다친 줄만 알았어요.”
묵호댁은 무서운 눈으로 말했다.
“내일 절에 아침에 가서 꼭 백팔배 드려! 스님에게 제대로 하는지 확인할 거야!”
묵호댁 아들들은 모기 소리만 하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시각, 중환자실 앞에 앉아 있는 천경 아빠 엄마는 천경이가 무사히 깨어나길 바랬다.
천경 엄마가 무거운 입을 뗐다.
“천경 아빠, 왜 우리 천경인 이리 운명이 얄궂을까? 그저 평범한 아이들처럼 자라면 안 되는 걸까? 그저 건강하게 자라는 게 그리 힘든 걸까?”
천경 아빠는 그저 한숨만 쉬었다.
장모님과 6년 전 비밀로 하기로 한 천경이 사주를 말할 수는 없었다.
4번째 고비인 지금 천경 아빠의 바람은 그저 내 딸이 요번에도 잘 이겨내리라는 믿음뿐이다.
그렇게 중환자실 앞 의자에서 천경 엄마 아빠는 날을 새다시피했다. 아침이 되니 중환자실 회진을 돌고 나오는 의사선생님이 천경 엄마 아빠에게 다가와 말했다.
“김천경 어린이는 점심쯤이면 일반 병실로 옮길겁니다. 작은 체군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쇼크가 약간 온 거니 너무 걱정 마십시요.”
그러고는 기계적으로 자리를 떴다.
그제야 천경 엄마 아빠는 한숨을 돌렸다.
“장모님한테 전화드리고 올게.”
천경 아빠는 중환자실 나가면서 말했다.
묵호댁은 사위 전화를 받고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엄마! 모래요?”
묵호댁 막내아들 녀석이 전화 밑에 와 앉으며 물었다.
“점심때 일반병실로 옮긴단다.”
그 말을 들은 묵호댁 막내 아들은 형 쪽을 보며 윙크를 했다.
그런 모습을 본 묵호댁은 아들 둘을 보며 말했다.
“너네 절에 올라가야지?”
아들 둘은 사색이 되어 동시에 소리치듯 말했다.
“진짜요! 천경이 괜찮아졌다면서요?”
묵호댁은 약속은 약속이니 어여 다녀오라고 말하고는 병원에 다녀와야겠다며 집을 나섰다.
천경이 외삼촌 둘은 할 수 없이 터덜터덜 절로 향했다.
#4
천경이가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의 추석이었다. 가족들은 강원도 양양에 있는 큰집에 가려고, 구로역에서 작은 아빠의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 해마다 명절에는 작은 아빠의 봉고차로 귀성길을 떠났다.
“엄마, 나 저거 하나만 먹으면 안 돼요?”
작은 아빠 차를 기다리는 동안 천경이는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와 어묵을 엄마를 졸라 사 먹었다.
저 멀리 작은 아빠 차가 보이니 천경 아빠는 천경이와 엄마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천경이는 아빠의 손짓이 점점 아득해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후 눈을 떠보니 흰 천장과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엄마, 여기 어디예요?”
천경이는 힘이 없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경아! 정신 들어?”
천경 엄마는 천경이의 손을 주물러 주며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천경 아빠는 간호사를 부르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의사가 곧 오더니 천경이 눈에 랜턴을 비추며 말했다.
“김천경 어린이? 괜찮아요?”
천경이는 모기 소리만 하게 대답을 했다.
“조금 어지러운데 괜찮은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은 청진기로 천경이를 진찰하며 말했다.
“구토 증상은 없어요?”
천경이는 또 모기 소리만 하게 답을 했다.
“네. 그치만 어지러워요.”
의사쌤은 링거를 확인하고는 천경 엄마 아빠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 구토는 다 했으니 속이 편할 거예요. 영양제 링거 다 맞고 가셔도 됩니다.”
천경 아빠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저희가 지금 명절이라 시골을 내려가려 했는데 괜찮을까요?”
의사쌤이 깊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장거리는 무리일 듯싶은데요. 그냥 집에서 명절을 보내시는 게 어떨까요?”
그때 갑자기 천경이가 벌떡 일어날 것처럼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저 갈래요! 시골 갈 수 있어요!” 자기 딴에는 크게 소리를 치는 듯했지만 그 소리는 모기 소리만큼 작았다.
의사쌤은 작게 한숨을 쉬며 천경이 엄마 아빠를 보며 말했다.
“차 안에서는 최대한 쉬게 하세요.”
그렇게 영양제를 다 맞고 작은 아빠 봉고차를 탄 천경이는 동갑내기 사촌 미영이와 언제 아팠냐는 듯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사촌 미영이는 신기하듯 천경이를 보며 말했다.
“너 아까 갑자기 우리 차 보고 쓰러진 거 알아?”
천경이는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내가? 쓰러져? 나는 울 아빠가 너네 차 왔다고 빨리 오라고 한 거밖에 기억이 안나.”
“너 쓰러져서 바닥에 다 토하고 병원 가서도 토하고 했었어. 너 옷도 큰엄마가 갈아입혀 줬어. 기억 안 나?”
미영인 신기한 걸 구경한 거 마냥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그 말을 듣는 천경 아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까 천경이가 거품을 물고 눈은 까뒤집어져서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했을 때, 늘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대바늘로 손가락 발가락 열 개에 예전 스님이 했던 것처럼 피를 냈다. 그랬더니 뒤틀린 사지와 뒤집힌 눈이 돌아왔고 그 후로 다 토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모습은 사촌인 미영이는 못 봤나 보다. 그저 토하는 천경이만 본 듯해서 천경 아빠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 천경이의 5번째 죽을 고비였을까, 시골 내려가면 장모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천경 아빠는 생각했다. 이런 얘길 할 사람은 장모님밖에 없었으니까. 장모님과의 둘만의 비밀이기에.
그래도 천경이가 나이가 들면서 그 고비가 약해지는 듯했다. 중환자실에 안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천경 아빠는 위안을 삼았다.
우리 천경이 이제 10년만 잘 이겨내면 천경이의 운명의 장난은 끝이 날 거라 믿는다. 태어나 10년 잘 버텼으니 남은 10년쯤이야 우리 천경인 꼭 이겨낼 거라고 믿는다. 꼭! 하늘에 계신 장인어른! 그리고 어머니! 꼭 우리 천경이 지켜주세요.
천경 아빠는 시골 내려가는 내내 마음속으로 계속 빌고 또 빌었다.
#5
세월은 흘러 어느새 천경이는 중학생이 됐다.
천경이가 세 살 때 왼쪽 사시 수술을 하며 같이 한 백내장 수술은 대성공이라고 집도의는 말했었다. 하지만 천경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보름쯤 알았다. 천경이 왼쪽 눈은 실명을 했다는 것을. 수술이 대성공이라고 하던 집도의의 말이 다 거짓이라는 것을.
수술한 지 5년 만에 초등학교 입학해서 신체검사를 하고 처음 알았다.
시력검사를 하는데 천경이가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으로 시력검사표를 보더니 안 보인다고 했다.
왼쪽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 시력 검사표를 볼 때는 하얀 건 판이고 검은 건 글자인지 숫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양호 선생님은 천경 엄마에게 심각하게 말했다.
“아마도 천경이가 약시(저시력) 같습니다. 이러면 장애 등급도 나올 텐데, 큰 병원에 한번 가보시고 종로구 쪽에 특수학교가 있습니다. 그리로 전학을 가는 게 나을 듯싶네요.”
천경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때 그냥 사시 수술만 했더라도 왼쪽 눈은 오른쪽만큼 조금이라도 보였을 텐데. 괜히 집도의와 천경 아빠가 우겨서 백내장인지 하는 수술까지 해서 애 눈이 실명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천경이는 초등학교를 시각장애인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로 1학년 중간쯤 전학해서 6년을 다니고 졸업했다.
천경이가 중학교 입학할 때, 천경이 엄마, 아빠는 일반 중학교를 보내야 할지 특수학교에 그냥 남아 있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천경이 엄마는 그냥 초등학교랑 같이 있는 시각장애인들의 특수학교에 보내자고 했고 천경 아빠는 천경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일반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우겼다.
본인이 천경이 사시 수술할 때 백내장도 같이 하라고 우겨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이 장애인이 됐다는 걸 천경 아빠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나 보다.
술을 마시고 오는 날에는 천경이를 붙들고 아빠가 미안하다고 울며 내 눈 한쪽이라도 우리 천경이한테 줄 거라고 늘 말했다.
천경이가 초등 6년 동안 특수학교 다닌다는 것을 천경 아빠는 용납이 안 되었다.
결국 6학년 1년 내내 천경 엄마, 아빠는 천경이 중학교 진학 문제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결국 천경 엄마, 아빠는 타협점을 찾았다.
엄마는 지금 초등학교에 있는 중학교를 보내자 했고 아빠는 무조건 일반중학교를 보내자고 하는 상황에 그 타협점은 영등포에 있는 일반학교 안에 약시반만 따로 있는 중학교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결국 천경인 종로에서 영등포로 통학을 하게 됐다.
초등학교 졸업해서 같이 간 친구 몇 명이 있긴 했지만 6년을 특수학교에 있던 천경인 일반학교 그것도 약시반이 낯설고 적응이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전맹 친구들과 약시 친구들이 뒤섞여 그나마 잼나게 놀았었는데 여길 오니 일반초등학교에 약시반이 있는 아이들이 졸업해서 다시 이 중학교로 온 여자아이들의 텃새가 너무 심했다. 대장 노릇을 하던 자그마한 계집애가 몇 안되는 여자 애들과 남자 애들을 갈라놓고 여자 애들끼리도 은근히 따돌림을 시켰다. 그중 천경이는 다른 특수학교에서 왔으니 더 괴롭힘을 당했다.
그 조그마한 계집애 눈에 거슬리면 하루종일 혼자 밥을 먹어야했고 혼자 우두커니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 조그만 계집애를 거스르면 그 무리 속에서 천경이는 배제를 당했다.
그게 여기 약시반의 룰이 되어버렸다.
밝은 성격의 천경인 그걸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이럴 거면 그냥 집 가까운 일반학교를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몇 날 며칠 고민을 하다 천경인 조심스레 엄마에게 말을 했다.
천경이 엄마는 조용히 천경이 말을 듣고는 말했다.
“천경아. 그럼 너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가는 건 어때?”
“엄마, 그 중학교를 가려면 점자를 알아야 한대. 점자로 시험을 봐야한다고 하더라고. 거기 다니는 친구에게 물어봤어.”
“그래? 그럼 요번 학기까지만 다니고 새 학년 올라갈 때 전학을 가자. 그게 친구 사귀기도 좋을 거야. 중간에 전학 가는 것보다는.”
“응! 힘들어도 반 학기 참아볼게.”
천경이는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엄마에게 아기처럼 안겼다.
이제는 엄마보다도 커진 천경이.
태어날땐 1.5㎏의 작은 아기였는데 어느새 이리 컸는지 천경 엄마는 천경이가 대견했다.
하지만 천경이의 스트레스가 한계에 도달했을까?
어느 날, 점심밥이 얹혔는지 속도 답답하고 어지러웠다. 그날도 그 자그마한 계집애가 천경이를 못살게 굴었다.
청소 끝나고 집에 가야 하는데 빗자루를 든 손이 덜덜 떨렸다.
천경이는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어 양호실로 가려는데 그 조그마한 계집애가 천경이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너 어디가? 청소 땡땡이 치는거야?”
천경인 그 아이가 빙글빙글 보였다..
“그게 아니라 내가 어지러워서. 양호실 다녀와서 치울게”
그 조그마한 계집애는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너만 아파? 나도 아파? 청소 다하고 가!”
천경이가 교실문으로 나가려는데 그 조그만 계집애가 교복 치마를 잡아당겼다.
천경인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소리는 안 들리고 조그마한 계집애가 천경이를 향해 뭐라 뭐라 하더니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오고 어느새 담임쌤과 양호쌤 모습이 천경이 눈에 희미하게 보이며 암흑이 되었다.
얼마나 잤을까?
천경이가 눈을 뜨니 늘 익숙한 하얀 천장, 그리고 익숙한 소독약 냄새가 천경이 코를 찔렀다.
또 병원에 왔구나. 천경이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정신 들어?”
고개를 돌리니 천경이 엄마, 아빠가 걱정스레 보고 있었다.
천경인 뭐라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청소 시간에 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하더라. 얼마나 놀랐는지. 점심 먹은 게 체한 거니?”
천경 엄마는 계속 천경이에게 말을 건넸다.
천경 아빠는 천경이가 깨어난 것을 보고 조용히 병실을 나와 묵호댁에게 전화를 걸었다.
천경 엄마한테 천경이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회사서 받고 부랴부랴 나오는 길 묵호댁에게 전화를 걸었다. 천경이가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묵호댁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다. 그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게.
공중전화에서 전활하니 처남이 받는다. 역시 묵호댁은 절에 갔다 했다.
천경이 잘 회복중이라고 처남에게 전하고 천경아빠는 전화를 끊었다.
그 시각 묵호댁은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또 손녀딸이 아픈가 봅니다.”
불공 드리는 묵호댁 옆으로 스님이 와 합장을 한다.
“네, 학교에서 쓰러졌다 하네요. 이번이 6번째네요. 매번 이제는 이런 소식이 굳은살이 밸 것 같은데도 들을 때마다 적응이 되진 않습니다.”
묵호댁은 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잘 버티셨어요. 불자님도 손녀딸도. 14년 잘 버티셨으니 남은 6년도 곧 지나갈 겁니다.”
“늘 감사합니다. 스님.”
그렇게 천경이의 6번째 죽을 고비는 가을이 무르익어 갈 때쯤 또 한고비를 넘겼다.
#6
천경이 엄마 아빠는 오늘도 천경이의 전학 문제로 고심을 했다.
천경 엄마는 천경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있는 특수 중학교로 전학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얼마 전 천경이가 그곳에 가려면 점자를 알아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려면 한 학년을 유급해야 한다.
천경이가 12월생이니 유급이야 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천경 아빠랑 천경인 일반학교로 전학을 원했다.
더욱이 얼마 전 청소시간에 쓰러져 병원에 있을 때 급체로 쓰러진 줄 알았는데 그동안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그 스트레스가 천경이를 심리적으로 압박한 듯했다.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몇 명 안 되는 반 안에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될 것을. 어찌 친구를 힘들게 하는지. 사춘기 아이들이어서 이해는 된다지만 그래도 천경 엄마는 그게 속상했다. 일반 학교에 가면 비장애인 아이들이 우리 천경일 잘 대해줄지도 걱정이 되었다.
몇 명 안 되는 특수반 아이들도 서로 마음이 안 맞아 천경이가 맘고생을 했는데 말이다.
천경이 말마따나 50-60명 되는 교실에서 설마 친구 한 명 못 만들겠냐며 밝게 웃으며 말하던 딸래미 말마따나 그래, 넓은 세상도 보고 하는 게 나을듯 싶었다.
중3 새학기!
천경이는 집 앞에서 가까운 일반 학교 여중으로 전학을 갔다.
중3이다 보니 1, 2학년 때 알고 지내던 아이들이 중3 와서는 서로 같은 반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아이들과 같은 반이 안되어 아쉬워하는 아이들, 교실 안은 시끌벅쩍했다.
천경이는 그 분위기를 본 순간, 이곳에서도 외톨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1년을 어찌 버텨야하나 우울해 있는데 한 친구가 다가왔다.
“안녕! 너 천경이라며? 난 혜영이야. 만나서 반가워!”하며 천경이 책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인사를 한다.
천경이도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응. 만나서 반가워.”
“이따 점심시간에 도시락 같이 먹자. 점심 때 저 뒤로 와. 거기가 내 자리야.”
하며 싱긋 웃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친구를 천경인 뒤돌아 쳐다봤다.
혜영이란 아이의 책상에는 두 세명의 아이들도 같이 있었다.
그렇게 전학 첫날 천경이는 먼저 다가와 준 친구 혜영이와 그의 친구들과 금세 친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혜영이 부모님이 시각장애인이시란걸 알았다. 천경이네는 종로에서 천경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아서 동네 터줏대감이나 다름없었다.
천경 엄마가 워낙 사교성이 좋아 천경이가 일반 학교 전학 올 때쯤 천경이 또래가 누가 있나 수소문을 했고 천경이 또래 친구들의 천경이가 혹 그 수소문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된다면 많은 도움을 부탁한다고도 말해 놓은 상태였다.
거의 천경이는 엄마 찬스로 무난한 전학 생활을 보냈다.
전학 간 지 두 달쯤 됐을 때 한 달에 한 번 첫 주 월요일 조회 시간이었다.
중3 교실은 3층이었고 강당을 가려면 지하로 가야 했다.
하지만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한꺼번에 지하로 몰리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해야한다고 친구들이 말했었다. 그날도 천경이는 친구들과 조잘대며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오는데 마지막 세 개가 남은 계단에서 뒤에 아이들에게 밀려 넘어지고 말았다. 친구들이 천경이 양옆에 있었지만 뒤에서 아이들이 밀려 내려오는 통해 천경이를 잡아 줄 수 없었다. 한 친구가 “야! 천경이 계단에서 떨어졌어!” 크게 소리를 쳤지만 워낙 시끄러워 아이들은 듣지 못했고 천경인 계단참에 넘어져 있는 상황에 내려오던 아이들이 천경이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
천경인 “으악!” 소리를 질렀고 그제야 친구들도 소리를 질렀다.
“야! 천경이 일으켜! 밀지 마! 이것들아!”
금세 계단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덩치 큰 친구가 천경이를 번쩍 안았다.
그러고는 지하 강당 천경이 반이 앉는 강당 의자에 천경일 내려놓았다.
천경인 눈물 범벅이 되며 발목을 잡고 아프다고 울었다.
한 친구는 담임선생님을 부르고 담임 선생님이 오셔서 천경이 다리를 보고는 경악을 하셨다.
발목은 퉁퉁 부어있고 다리에는 긁힌 자국들과 까진 자국들 무릎에서는 피까지 났다.
“천경아! 걸을 수 있겠어?”
담임이 물었지만 육안으로 봐도 절대 걸을 수 없다는 걸 유치원생도 알 정도였다.
담임은 천경일 안고 온 덩치 큰 친구에게 말했다.
“천경이 업어서 양호실로 데리고 가. 쌤이 바로 따라갈게.”
덩치 큰 친구가 조심스럽게 담임을 보며 말했다.
“쌤! 저도 아까 넘 놀래서 천경일 안고 내려왔지만 팔을 갑자기 써서 놀랬는지 팔이 저려서 못 업을 거 같아요. 쌤이 업으셔야 할 거 같아요.”
담임쌤은 남자쌤이지만 체구가 작으셨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담임쌤이 말했다.
“천경이 좀 내 등에 업혀줘.”
친구 몇 명이 천경일 부축하며 담임쌤 등에 천경이를 들쳐업었다.
천경이는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악! 소리를 냈다.
양호실 침대에 눕히고 양호쌤이 오셔서 천경이 발목을 보더니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발목이 금이 갔거나 부러진듯해요. 119를 부르던지 보호자 오시라고 해야겠어요.”
그 말은 들은 담임쌤은 우선 천경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천경 엄마는 전활 받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침에 웃으며 등교한 딸이 다쳤다니, 그것도 학교안에서.
천경 엄마는 천경이가 간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실에 가니 담임쌤이 천경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천경이는요.”
“천경어머니, 오셨어요. 천경이는 x-ray 찍으러 갔습니다.”
천경 엄마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병원 바닥에 주저 앉았다.
담임쌤은 그런 천경 엄마를 부축하며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천경일 좀 더 살뜰히 챙겨야 했는데.”
천경 엄마는 겨우 부축을 받으며 병원 의자에 걸터 앉았다.
조금 뒤, 천경 아빠도 작업복 차림으로 응급실로 뛰어 들어왔다.
“천경이는?”
천경 엄마를 보자마자 물었다.
“안녕하세요. 천경이 담임입니다. 천경이 아버님 되시죠?”
그제야 천경 아빠는 담임이 있는 곳을 봤다.
“예. 안녕하세요. 우리 천경이는요?”
“네 지금 x-ray실에 갔습니다. 간지 좀 됐으니 곧 올 겁니다.”
그때, “김천경 보호자님!” 간호사가 크게 불렀다.
담임과 천경 엄마 아빠는 소리 나는 대로 갔다.
천경이는 침대에 깁스를 하고 잠들어 있었다.
주치의가 다가와서 말했다.
“발목이 강한 압력에 부러졌어요. 수술할 정도는 아니고, 깁스 두 달 정도 하면 될듯합니다. 그때 다시 상황을 보죠.”
말하고는 돌아서는데 천경 엄마가 주치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근데 우리 천경이는 왜 안 일어나는지.”
주치의는 천경 엄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아이가 많이 아파해서 진통제를 놨습니다. 좀 있으면 일어날겁니다.”
그러고는 주치의는 빠른 걸음으로 천경이 엄마를 지나쳐갔다.
천경 엄마와 아빠는 누워 있는 천경이만 바라보았다.
담임은 그런 천경 부모를 보다 조심스레 말했다.
“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천경이 너무 아프면 학교 안 나와도 됩니다. 병가 처리 해놓겠습니다. 정말 오늘 일은 죄송합니다.”
그제야 천경 아빠는 담임을 배웅하러 나가고 천경 엄마는 담임에게 인사만 하고 간이 의자에 앉았다.
천경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천경 엄마는 혼잣말을 했다.
“에구 우리 이쁜 딸, 전학가서 별 탈 없이 잘 지내서 한시름 놓나 했더니 얼마나 아팠을꼬.”
천경 엄마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천경 아빠가 그 모습을 보고 아무 말 없이 병원 밖으로 나왔다.
공중전화에서 묵호댁에게 전화를 걸었다.
늘 천경이에게 뭔일이 생기면 장모님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버릇이 되버린 것 같았다.
“장모님. 잘 지내시죠?”
묵호댁은 전활 받자마자 말했다.
“우리 천경이에게 뭔 일이 있나?”
천경 아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학교에서 조금 다쳐서 응급실에 왔어요.”
“어디가? 얼마나?”
묵호댁 역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발목이 부러졌어요. 한두 달 깁스를 하고 다녀야한대요.”
믁호댁은 깊은 한숨을 한 번 더 쉬었다,
“그잖아도 어제 꿈이 너무 안 좋아서 아침에 미숙이에게 전활했었네. 별일 없냐고. 별일 없다길래 개꿈인가 했는데 우리 천경이가 다치려고 그런 꿈을 꿨나보네.”
천경 아빠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그러자 묵호댁은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사 말하면 뭐하나, 어차피 일은 벌어졌는데.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네. 절이나 다녀와야겠어. 요번이 우리 천경이 7번째 고비였나 보네.”
천경 아빠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묵호댁 얘기에 귀 기울였다.
“김서방. 이제 4년만 잘 버티면 되네. 내 오늘부터라도 삼천배를 해야겠네. 백팔배 기도로는 이제 안되나 싶어. 그저 큰 고비 말고 작은 고비 한 번만 오길 남은 4년 동안 열심히 기도해야겠어.”
천경 아빠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장모님. 무릎도 안 좋으신데 삼천배는 무리세요. 그냥 매일 기도만 해주세요. 이제 백팔배도 그만 하시구요. 우리 천경이 태어나고 16년을 매일 기도해주시니 천경이가 그래서 이렇게 건강하게 우리 곁에 있나 봐요. 다 장모님 덕분입니다. 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장모님.”
울먹이는 천경 아빠의 목소리가 묵호댁에게 전달이 됐는지 묵호댁 역시 울컥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할미가 그거라도 첫 손녀에게 해 줘야지. 줄게 기도밖에 없으니, 어여 들어가 보게. 천경이랑 미숙이한테 안부 전해주고, 여름휴가에 한 번 오게나.”
그렇게 16살이 된 천경이는 7번째 죽을 고비를 또 한 번 넘겼다.
이제 딱 4년이 남았다.. 천경이가 스무살이 될 때까지.
천경 아빠는 수화기를 내려 놓고 병원으로 들어가며 하늘을 보며 빌었다. 오늘따라 태양이 더 눈이 부셨다. ‘아무쪼록 작은 고비 하나만 오게 해주세요’라고.
#7
천경이는 아빠가 원하는 인문계 대신 어릴 적부터 빨리 돈을 벌어 독립을 하고 싶어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17살 소녀에게는 취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쉽다고 생각했나보다.
고등학교 입학 후 새로운 친구들은 금방 사귀었다.
다 다른 중학교에서 왔으니 전학했을 때보다는 친구 사귀기가 더 쉬웠다.
고등학교 입학한지 두 달만인 5월에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는 천경이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학교에서 각반의 번호랑 같은 관광버스를 타고 경주 관광을 하는 2박 3일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행이었다.
더욱이 천경이는 가족들과 간 여행말고 이렇게 친구들과 오롯이 여행가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 들뜸은 한 달 전부터 친해진 친구들과 수학여행가서 뭘하고 놀지도 생각하고 그저 모든 게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천경이 엄마 아빠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처음 보내는 혼자만의 여행이고 작년 담임에게 천경이 눈이 많이 안 좋으니 잘 좀 부탁한다고 했었지만 결국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도 당했었다.
50명이 넘는 아이들을 담임이 다 어찌 신경을 쓰겠나 싶고, 작년 담임은 그래도 40대 중반의 애아빠였지만 요번 고등학교 담임은 30대 중반의 노총각 쌤이었다.
그래서 천경 엄마는 더더욱 수학여행을 보내기 싫었다.
이유인즉슨, 애아빠였던 담임쌤도 애를 잘 못 챙겨줬는데 하물며 노총각쌤은 더 안 챙기겠지.
하지만 천경이는 수학여행 가는거에 들떠 있고 여고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수학여행이니 안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천경 아빠 역시 천경이가 여행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가족과 가는것도 아닌데다 천경이의 운명의 장난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묵호댁과 통화할때도 묵호댁은 꼭 보내야하나며 안보내면 안되냐고 했었다.
정 보낼거면 그날에 맞춰 묵호댁은 절에 2박 3일 들어가 있을거라 했다.
이런 어른들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경이는 여행 당일 신이나 있었다.
여행 가기 전날, 천경 엄마는 천경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천경아! 꼭 가고 싶어? 엄마는 걱정이 돼서 안 갔으면 좋겠는데.”
그런 엄마를 보며 천경이는 단호히 말했다.
“엄마! 엄마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하지만 나 이제는 어린애도 아니고 조심할게! 걱정마! 요번에 수학여행을 못가면 매번 그럼 나는 혼자 여행을 못가는 어린애잖어. 엄마도 이제 조금 나를 놓아줄 때가 됐다고 봐. 나도 그렇고.”
그렇게 밤새 대화를 나눈 모녀는 결국 딸의 승리로 끝났다.
천경 엄마는 천경이를 보내놓고 바로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천경 엄마입니다.”
담임은 무미건조하게 전활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천경이가 시력이 나쁜 건 아시죠? 애가 잘 다니는 거 같아도 허당인 애라, 2박 3일 동안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네네, 잘 알고 있습니다. 방 배정이랑 같이 다닐 친구도 자기 번호대로 해야 하는데 천경이는 친한 친구들과 배정했으니 너무 염려 마세요.”
천경 엄마는 그것이 더 걱정이었지만 더 이상 말할 수는 없었다. 담임이 보기에는 너무 과잉보호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담임과 통화를 했음에도 천경 엄마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그렇게 천경이는 학교에서 각반 차를 타고 경주로 출발을 했다.
1학년은 6반까지 있었고 천경이네 반은 5반이라 5호차를 탔다.
그렇게 버스 안에서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하고 잠도 자고 하니 어느덧 경주에 도착했다.
점심때라 점심을 먹고 첨성대를 갔다가 무열왕릉을 보러 가는 일정이었다.
첨성대를 구경을 하고 무열왕릉으로 출발을 했다.
천경이는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 점심 먹은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무열왕릉 가는 동안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친구 경미가 천경이를 막 깨웠다.
천경이는 잠결에 말했다.
“우리 다 온 거야?”
친구 경미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게 아니라 우리 버스가 고장나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한대. 그러니 내려서 뒷차 타야 해! 어여 일어나! 천경아.”
천경인 잠이 들깬 상태로 버스 안을 보니 얘들은 뒷차로 다 갈아타고 천경이랑 경미뿐이었다.
잠이 덜깬 천경인 버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친구 경미가 앞장서 가는데 꼭 평균대를 가는 것처럼 양팔을 벌리고 좁은 도로를 아슬하게 가는 게 아닌가.
천경이가 보기에는 그 좁은 도로 옆에 잔디밭이 있는데 왜 저리로 안가고 위험하게 좁은 도로로 가는 건지 이해가 안갔다.
천경인 친구 경미처럼 가지말고 잔디밭 밟고 가야지란 생각에 버스 계단 두 개를 내려와서 잔디밭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어라! 발이 안닫고 앞으로 훅 꼬꾸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천경인 잠이 확 달아났다.
그때 천경이 교복 뒷덜미를 누가 탁 움켜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김천경! 거기로 가면 안 돼!”
그 소리가 마지막이었다.
천경이는 작은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떨어지며 나뭇가지와 돌에 몸과 얼굴이 부딪쳤다.
기억이 나는 건 누가 천경이 뒷덜미를 잡고 둘이 같이 굴렀다는 것!
천경이 교복 카라 뒷덜미를 잡은 건 담임쌤이었다.
천경이가 좁은 도로로 가야 하는데 갑자기 낭떠러지 쪽으로 발을 내딛자 담임이 천경이 목덜미를 잡아당긴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한발은 허공으로 붕 뜬 상태라 앞으로 구르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비명 소리와 사이렌 소리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등등 천경이 귀에는 그 소리들이 아득히 들렸다.
천경이가 눈을 떴을 땐 온몸이 쑤시고 천근만근 몸이 무거웠다. 온몸이 누구에게 맞은 것처럼 아팠다.
“괜찮아! 천경아! 선생님! 천경이 일어났어요!”
친구 경미의 목소리였다.
천경인 그제야 한숨이 나왔다.
그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 죽지는 않았나 보다.”
6반 담임인 여자쌤이 친구 경미랑 천경이에게 왔다.
“좀 괜찮니? 어디 부러지거나 찢어진데는 없고 타박상이 좀 있어. 얼굴은 나뭇가지에 긁혔는데 흉은 안 질 거래. 몸은 좀 아플거야. 맞은 것처럼. 조금 안정되면 숙소로 가자. 링거 다 맞으면 가도 된대.”
그러고는 친구 경미에게 천경이 링거 맞을 동안 잘 보고 있다 다 맞으면 다시 말해 달라며 병실을 나가셨다.
친구 경미는 6반 여자 담임이 나가자마자 병원 오기까지 얘기를 빠른 랩처럼 하기 시작했다.
“천경! 너 아까 담탱이랑 낭떠러지로 구르는데 다들 너 죽은 거 아니냐 했어. 담탱이가 너 뒷덜미 안 잡았으면 너 진짜, 죽을 뻔했대. 너 근데 왜 낭떠러지로 간 거야?”
천경이는 친구 경미 말에 힘없이 말했다.
“내 눈에는 잔디밭으로 보였었어. 그래서 그리로 내려간 건데. 발이 땅에 안 닫더라. 담임쌤은 괜찮으셔?”
친구 경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담탱이는 괜찮아 찰과상 정도. 하긴 잔디밭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네. 무튼 큰일날 뻔했어. 너 진짜. 담탱이 아니었으면. 담탱이가 오늘은 좀 멋있어 보이더라.”
그렇게 천경이는 친구 경미의 랩같은 얘길 들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2박 3일 후 집에 도착한 천경이 모습을 보고 천경이 엄마 아빠는 놀랬다.
얼굴과 몸에는 온통 생채기와 상처투성이인 천경일 보고 천경 엄마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천경아! 너 혹시 맞은 거니? 아니, 맞은거 같진 않은데.”
천경 엄마는 천경이 이곳저곳을 살피며 호들갑을 떨었다.
천경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 너 교통사고 난 거야?”
그 말에 천경 엄마는 더 놀란 토끼눈이 됐다.
“교통사고?”
천경이는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런거 아니고 차가 고장나서 다른 차로 옮겨타다가 낭떠러지에서 굴렀어.”
천경 엄마 아빠는 더 놀래며, 담임한테 그리 부탁을 했는데 애를 안 챙겨서 애가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만드냐며 난리였다.
천경인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담임쌤 때문에 나 산거래. 담임쌤이랑 같이 떨어졌거든.”
그 말에 천경이 엄마 아빠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말을 잇지 못했다.
“나중에 담임한테 고맙다고 전화 드려줘. 괜히 또 담임한테 뭐라 하지 말고. 나 좀 쉴래.”
그러고는 천경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천경 엄마는 천경이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너 청심환은 먹은 거야? 몸은 괜찮아?”
천경 엄마는 쉴 새 없이 얘길 하며 천경이 방으로 쫓아 들어갔다.
천경 아빠는 안방으로 들어와서 묵호댁에게 전활했다.
“장모님, 천경이가 8번째 죽을 고비를 잘 넘기고 왔네요. 스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천경이가 수학여행 간 날 묵호댁은 천경 아빠 회사로 연락을 했다.
“김서방. 스님이 천경이 수학여행 간다 하니 보내지 말라 했어. 남은 3년 여행은 안 보냈으면 하시더라고. 근데 갔다니 그저 무사히 오길 기도해야지. 난 천경이 올 때까지 절에 가 있겠네.”
이렇게 천경이의 8번째 죽을 고비는 담임쌤 덕분에 그 고비를 넘겼다.
#8
천경이의 고딩 생활은 지금도 회상하면 가장 재밌고 많은 추억이 있는 시절이었다.
2학년 올라와서 극기 훈련을 가야하는데 천경이 엄마 아빠, 묵호댁까지 서울로 올라와 천경이 여행을 못 가게 막았다.
결국 천경이는 친한 친구들은 극기훈련을 다 갔는데 혼자 가질 못했다.
보내달라고 울어도 보고 졸라도 봤지만 외할머니까지 올라오셔서 결사반대를 하니 천경이는 이길 재간이 없었다.
수학여행 때 사고가 어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나보다.
천경이는 그런 어른들 마음이 백프로는 아니어도 한 50프로는 이해가 되긴 했다. 그래서 요번에는 어른들 말을 듣기로 했다. 하지만 서운한 마음은 사춘기 소녀에게 오래 남아 있었다.
천경이는 수련회 못 간 몇몇 아이들과 학교서 수업을 듣고 현장체험을 가야만 했다.
천경이는 한동안 속상해서 엄마 아빠와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 좋아하던 강원도 할머니네도 그해에는 가질 않았다.
그렇게 사간이 흘러 19살.. 고3이 된 천경이는 강원도 설악산으로 졸업여행을 떠났다.
요번에는 엄마, 아빠, 외할머니가 반대를 해도 가출을 하더라도 간다고 엄포를 놓았다.
고등학교의 마지막 여행이고 3년을 같이 지낸 친구들과도 이것이 마지막 여행이기에 천경인 결코 이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천경 엄마 아빠는 늘 가던 강원도이고 또 천경이 외갓댁과 친가랑도 가깝고 해서 마지막 고등학교 여행을 보내주기로 했다.
단, 엄마, 아빠는 천경이가 졸업여행 간 기간동안 묵호 외갓댁애서 지내기로 했고 여행이 끝나면 천경이는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외갓댁으로 바로 오는거로 합의를 하고 보냈다.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1학년 담임쌤이 고3도 담임이 되었다.
노총각이었던 담임쌤은 수학여행 다녀와서 한두 달 후 결혼을 하셨다.
늘 천경이를 볼 때마다 3년 내내 담임쌤은 말했었다.
“새신랑 얼굴 너가 다 갈아놔서 나 장가 못 갈 뻔했다.”하시며 천경이가 지나갈 때마다 머리에 꿀밤을 주셨다.
그것이 담임쌤의 제자에 대한 사랑이고 못 챙겨준 것에 대한 미안함이리라고 천경이는 생각했다.
아무튼 운명처럼 졸업여행도 1학년 담임이었던 선생님과 가니 천경이는 왠지 더 안심이 됐다.
그건 천경이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졸업여행을 보내는 것이 담임쌤을 믿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천경이는 고등학교의 마지막 꽃인 졸업여행을 떠났다.
서울역에서 모여 기차를 타고 강릉으로 가서 그곳에서 반별로 버스로 이동하는 코스였다.
기차에서 천경이와 친구들은 1학년때처럼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장난도 치며 시끌벅쩍하게 강릉에 도착했다.
반별로 버스를 탄 천경이 외 친구들은 첫날은 점심 먹고 강릉 정동진을 구경하고 숙소인 속초로 가서 저녁 먹고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고3의 밤 행사도 하기로 하는 일정이었다. 고등학생이라 술은 먹으면 안되지만 졸업 여행이었고 선생님들도 심하지 않으면 술 한두 잔 정도는 눈감아 주셨다.
그렇게 1일차 행사가 다 끝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간 천경이와 친구들은 몰래 사온 술과 안주를 먹으며 무서운 얘기를 서로 돌아가며 얘기를 하고 분신사바 놀이도 하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천경이는 밤새 친구들과 놀고 싶었는데 술을 한잔 하니 자꾸 잠이 쏟아져서 구석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다.
친구들은 술에 취해 우는 친구, 미친듯이 웃는 친구,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거나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진 친구들 등등 방안은 난장판이었다.
그러다 덩친 큰 여자애가 갑자기 일어서며 말했다.
“나 화장실 가고싶어잉. 저리 비켜.”
덩치 큰 친구는 술에 취해 비틀 거리며 화장실로 가려는데 그 가는 길목에 하필이면 천경이가 누워 자고 있었다.
술이 취한 그 덩치 큰 친구는 비틀대다 천경이 배를 밟고 화장실로 갔다.
덩치가 큰 애가 천경이 배를 밟았으니 천경이는 고통에 신음을 내뱉었다.
급기야 숨이 안 쉬어져서 컥컥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릴 들은 술 안 먹은 모범생 친구가 천경이에게 다가가더니 얼굴이 새파래지고 숨을 잘 못쉬는 천경일 보고 너무 놀래서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친구들은 그 모습에 놀라 담임쌤을 부르러 나가거나 소리를 지르며 다른 방 친구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담임은 너무 놀래서 뛰어 들어왔다.
모범생이 심폐소생술 하는 거 보고 담임쌤이 손을 교대하고 119 구급차를 부르라고 소리를 쳤다.
담임은 심폐소생술을 하며 친구들에게 어떻게 된거냐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렇게 천경이 좀 잘 보살피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담임은 친구들을 타박했다.
구급차가 오고 담임과 모범생 친구와 같이 천경이를 싣고 속초응급실로 향했다.
담임은 응급실 도착 후 천경 엄마가 알려준 외갓댁 번호로 전화를 했다.
1학년 수학여행때는 부모님이 놀라실까봐 전활 안 드리고 여행 끝나고 돌아간 천경이 모습을 보고 천경 엄마한테 연락을 받았다. 그때도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기니 담임은 머리가 아파왔다.
“천경어머니! 밤 늦게 죄송합니다. 천경이가 지금 속초 응급실에 와 있어요. 조그만 사고가 있어서.”
천경 엄마는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활 받았다가 너무 놀라 수화기를 떨어뜨릴뻔 했다.
응급실로 달려온 천경이 엄마, 아빠와 묵호댁은 사색이 되었다.
천경이는 아무런 외상은 없는데 의식이 없었다.
주치의는 안정제를 맞아 잠이 든거니 좀 기다리면 깬다고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담임쌤은 천경이 엄마, 아빠와 묵호댁에게 계속 죄송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묵호댁은 그런 담임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선생님이 우리 천경이 두 번이나 살려주셨는걸요. 저희가 감사합니다.”
담임쌤과 모범생 친구가 숙소로 돌아가고 난 후, 천경이가 눈을 떴다.
“엄마, 아빠. 할머니. 여기가 어디예요?”
천경이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딘지 너가 더 잘 알걸? 이제는 너무 익숙한 냄새잖어.”
천경이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천경이에게 너무 익숙한 냄새. 엄마 냄새보다 이 병원 냄새를 더 많이 맡아봤을 테니까.
“나 또 실려 온 거야?”
하며 천경이는 웃었다.
이렇게 19살 소녀인 천경이는 스무살을 두 달 남긴 졸업여행에서 9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천경 아빠는 서울 올라가기 전 천경이와 천경 엄마를 데리고 묵호댁과 절에 올라갔다.
절에서 스님께 공손히 인사를 하고 천경 아빠는 말했다.
“이제 우리 천경이 죽을 고비를 다 넘긴거겠지요? 스님!”
그 말에 천경이와 천경 엄마는 무슨 말인가 싶어 눈만 껌뻑거렸다.
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말했다.
“네. 이제 천경이의 죽을 고비는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 다음달 생일이 지나면 이제 건강하게 잘 살겁니다. 그리고 천경이에게 준 그 부적은 꼭 생일 지나는 밤 12시에 태워주세요.”
묵호댁과 천경 아빠는 스님께 90도로 인사를 하며 동시에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의 기도 덕분입니다.”
스님은 천경이와 엄마, 아빠. 그리고 묵호댁이 절을 내려갈때까지 합장을 하고 머리를 숙였다.
천경이와 천경 엄마는 묵호댁과 천경 아빠에게 물었다.
“무슨 죽을 고비? 그게 뭔데,”
라고 계속 물으며 절을 내려가지만 묵호댁과 천경 아빠는 그저 웃음만 먹은 채 절을 내려갔다.
그들의 등 뒤로 빨간 노을이 비추고 있었다.
천경이의 목에 걸린 펜던트도 노을빛에 반짝 빛나고 있었다.
* 2026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참여자가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