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13 작성자 아이**04 등록일 2026-07-31 좋아요 0
도서명2026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빛이 될 때
저자권희정, 김영락, 민경, 수연, 안시아, 엄다솜, 이민혁, 정솔,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까만 자국
“청소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점장님은 말끝에 숨을 끌어내렸다. 숨이 나를 향해 흘러오는 동안, 그제야 알았다. 아, 뭔가 잘못했구나.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머릿속에서 몇 개의 문장이 스쳤지만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점장님은 의자에 기댄 채 허리를 짚고 있었다. 방금 전 2층 장난감 코너에서 물류를 확인하던 도중 미끄러졌다고 했다. 키즈카페와 붙어 있는 그곳은 아이들이 북적거렸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노래가 끊이지 않고, 엄마들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쌓이는 곳. 그 한가운데서 넘어졌고, 아이들은 재밌다는 듯 그저 웃었다고. 덧붙이며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나는 청소 업무를 맡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청소 아가씨라고 부른다. 점심을 막 넘긴 시간에 1층 바닥을 닦고 있었다. 갑자기 들려온 큰 목소리에 대걸레를 벽에 제대로 세워둘 틈도 없이 비상구 계단을 올랐다. 숨이 가빠졌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 점장님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청소 제대로 안 할 거야? 손님이 넘어지면 어쩔 뻔했어.”
말이 떨어질 때마다 허리를 짚은 손이 더 깊게 눌리는 것처럼 보였다. 손가락이 들렸다가 곧장 내 쪽으로 뻗어왔다. 그 끝이 내 눈앞에서 멈췄다. 나는 손을 모은 채 고개만 숙였다. 시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점장님의 거친 숨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입을 열수록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떠오른 것들이 지금은 말이 되어서는 안 됐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그 말을 끝으로 점장님의 목소리는 끊겼다. 나는 고개를 더 깊게 숙였다. 입사하고 이렇게 크게 혼난 건 처음이었다. 눈물이 눈꺼풀 바로 아래까지 차올랐다가 흘러내리기 직전에 간신히 멈췄다. 울면 안 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사무실 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키보드 소리만 일정하게 이어졌다. 발소리를 죽여 돌아섰다. 걸음이라기보다 끌려 나가는 느낌으로 문 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까지 숨을 얕게 나눠 쉬었다. 혹시라도 이 소리마저 들릴까 봐. 문을 닫고 나오자 안쪽에서 숨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진짜 왜 저 모양이야…”
손잡이에서 손을 떼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참고 있던 것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나는 얼굴을 가리고 복도를 걸었다. 숨을 곳이 필요한 사람처럼,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화장실로 들어와 변기 칸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변기 옆을 붙잡은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몸이 바닥으로 꺼지며 내려앉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입을 틀어막았다. 울음이 올라왔지만 마음대로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 더 답답했다. 속에서는 욕이 한가득 올라왔지만 밖으로는 나오지 못했다. 그저 숨만 거칠게 새어나왔다. 눈물은 멈출 생각도 없이 계속 흘렀다. 닦아도 다시 차올랐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숨이 조금씩 고르게 돌아오기 시작했을 때에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휴지를 몇 장 뽑아 눈가를 눌러 닦고 구겨진 휴지를 변기에 떨어뜨리고 물을 내렸다. 칸을 나와 세면대 앞에 섰다. 수도를 틀어 찬물을 손에 받아 얼굴에 여러 번 끼얹었다. 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숨을 내쉬고 거울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울던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지워지지 않은 피로가 눌러붙어 있는 얼굴 같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땀방울이 떠 있었고 눈가는 붉게 번져 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날들이 쌓여 있는 눈이었다. 찬물로 볼을 두 번 두드려 적셨다. 20대 초반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직 나이로는 어리고 예쁘다고 해야 할 텐데, 거울 속 나는 많이 지쳐 보였다. 오른쪽 가슴팍에 ‘서울마트’라고 적힌 유니폼에 젖은 손을 닦아내고 몇 번 털어 구겨진 부분을 폈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틴트를 꺼내 입술에 대충 발라 색을 채워 넣었다. 입술을 몇 번 맞물리며 색을 펴 바르고, 입모양으로 작게 소리를 흉내 내듯 움직였다. 거울 속 얼굴에 붉은 색만 어색하게 떠올라 있었다. 손목에 끼워둔 머리끈을 빼 헝클어진 머리를 한 번에 쓸어 올려 묶었다.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옷깃을 다시 잡아당겨 정리했다. 화장실 문이 열렸다. 캐셔 이모가 들어왔다.
“연정이 너, 화장실에서 농땡이 피우는 거 아니지?”
장난스러운 말투로 내게 먼저 인사했다. 그녀는 마트에서 나를 유일하게 이름으로 불러 주었다. 나는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만 작게 숙였다. 방금까지 울고 있던 얼굴이 보일까 봐 짧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옆을 지나갔다. 문을 밀고 나오면서야 겨우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켰다.
사무실 옆에 기대 두었던 대걸레를 집어 들고 비상구 문을 밀어 열었다. 마트 내부에는 사무실 층과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점장님은 청소하는 사람은 손님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며 꼭 비상구로 다니라고 했다. 나는 출퇴근할 때도, 한 층의 청소를 마치고 다음 층으로 내려갈 때도 늘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래도 이곳으로 들어서면 공기가 조금 달랐다. 마트 안에 맴도는 특유의 냄새와 소음이 끊기고, 창문 틈으로 기울어진 햇빛이 들어와 걸렸다. 그 좁은 창문에만 바깥이 걸려 있었다. 빛의 기울기를 보며 시간을 짐작했다. 물류 박스와 사람들 사이에 끼여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다 보면 낮과 밤이 언제 바뀌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곤 했다. 걸레를 든 채 계단을 따라 3층에서 지하 1층까지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공기가 눅눅해졌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지하 1층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 시선들이 전부 나를 향하는 것 같아 몸이 굳곤 했다. 바닥을 닦고 있는 나를 훑어보는 것 같아서 더 허리를 숙이고, 걸레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은 누가 보든 말든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지하 1층은 식품과 생활용품 코너가 붙어 있는 공간이었다. 채소 진열대 앞에서는 장바구니가 부딪히는 소리가, 육류 코너에서는 할인 스티커를 붙이는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퇴근 시간과 맞물린 탓인지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가격표를 들여다보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걸레를 밀어 움직였다. 바닥 위를 지나가는 걸레가 사람들의 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지하 일 층은 하루 중 마지막으로 청소하는 곳이었다. 동시에 가장 힘이 많이 드는 공간이었다. 시식 코너와 해산물 코너가 가까이 붙어 있어 바닥에는 물기와 기름기가 뒤섞여 있었다. 수산 코너에는 장화를 신은 직원들이 오가며 남긴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과거에 손님으로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카트를 끌고 다니던 그때는 바닥을 이렇게 들여다볼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 바닥 한쪽에 길게 그어진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물이 번진 자국 사이로 검게 눌린 선 하나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선은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바퀴 자국이 같은 자리를 지나간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일정한 방향이 아닌 엇갈리며 번져 있었다. 매끈해야 할 마트 바닥 위에 생긴 그 검은 자국은 닦아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얼룩 같았다. 첫 출근하던 날부터 보던 흔적이었다. 이 시간만 되면 물류 카트들이 몰려들고, 직원들이 그루마를 끌고 와 빈 진열대를 채워 넣었다. 그때마다 바퀴가 지나간 자리가 눌려 남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 자국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괜히 더 신경 쓰일 것 같아서였다. 대신 걸레에 힘을 더 주었다. 점장님의 얼굴이 스쳤다. 더 세게 눌러 닦았다.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기보다, 같은 이유로 다시 혼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기를 여러 번 밀어내고 나니 바닥이 조금씩 빛을 되찾았다. 번들거리는 표면 위로 형광등 불빛이 고르게 번졌다. 발끝으로 방금 닦은 자리를 살짝 눌러 보았다. 미끄럽지 않은지, 다시 자국이 남지 않는지 확인하듯이. 괜히 한 번 더 눌러 보았다. 비상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밀어 열었을 때, 창밖은 이미 흐려져 있었다. 빛은 사라지고 저녁이 내려앉고 있었다.
청소 세탁실로 가 걸레를 헹궜다. 탁한 물이 흘러나오자 맑아지는 걸 보고서야 수도를 잠갔다. 걸레를 벽에 기대 세우고 젖은 손을 조끼에 대충 훑어 닦았다. 사무실 왼쪽 끝,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내 의자가 있다. 출근할 때 입고 벗어둔 후드 집업을 등받이에 걸어 두었었다. 유니폼 조끼를 벗어 의자에 걸고 회색 후드 집업을 입었다. 가방을 메고 사무실 안을 훑어봤다. 아직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직원들이 자리에 있었다.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괜히 눈치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그대로 문 쪽으로 향하다가 잠시 멈춰 섰다. 발걸음이 점장님 책상 쪽으로 돌아섰다. 문 너머로 들렸던 말이 자꾸 귓가에 남았다. 저 모양.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어떤 모양이길래 여기에 서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할 말을 끝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점장님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화면 아래쪽에 놓여 있던 막대사탕 통에서 하나를 집어 말 없이 내 쪽으로 밀었다.
“됐다. 고생했고 가봐.”
던지듯 말하고는 그제야 나를 한 번 흘끗 보았다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손을 뻗어 사탕을 집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문을 나서며 손에 쥔 사탕을 한 번 더 쥐었다.
손바닥을 펼쳐 빗방울을 맞으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비는 굵게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에 본 뉴스에서는 비 소식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하늘은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는 듯 제멋대로 쏟아냈다. 거리에는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였다. 나처럼 갑작스럽게 비를 맞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후드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발걸음을 옮겼다.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제각각의 속도로 달렸다. 외투로 머리를 가린 채 뛰어가는 회사원, 가방을 머리 위에 얹고 발을 동동 구르는 초등학생, 옆에 선 여자친구의 머리를 감싸 쥐며 손을 얹고 함께 달리는 연인. 그 사이를 지나가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몸을 숨길 방법을 찾는다는 것. 나는 고개를 더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루가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입에 물었다. 달콤한 맛이 입 안에 번졌다.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젖은 소매 끝이 손등에 차갑게 들러붙었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2층이라 계단으로 올라가면 금방이었지만, 물에 젖은 채로는 한 층을 오르는 게 버겁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 2층을 누르고 벽면의 거울을 바라봤다. 비에 젖은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초췌한데도 어딘가 어설프게 웃고 있는 얼굴은 무엇을 닮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후드 끝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연한 회색이던 외투는 물을 머금어 거의 검은색에 가까워져 있었다. 손으로 몇 번 털어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손으로 넘기고 흐트러진 부분을 대충 정리했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틴트를 꺼내 입술에 발랐다. 색감이 번지며 스며들었다. 엘리베이터는 안내음이 짧게 울리며 문이 열렸다. 현관 앞에 서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을 여는 순간 된장찌개 냄새가 밀려 나왔다. 냄새만으로도 하루 종일 쌓여 있던 긴장이 풀렸다. 현관 한쪽에는 휠체어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젖은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서자 소파에는 이모와 엄마가 앉아 있었다. 엄마는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예전에 방영되던 개그콘서트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이모는 내 모습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정아, 우산 안 가져갔어? 감기 들겠다. 얼른 씻어.”
나는 젖은 어깨를 털며 옅게 웃어 보였다. 이모는 내 어깨를 툭툭 털어주었다. 이모를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엄마와 닮은 면이 많았다. 얼굴도 그랬지만 다정한 말투까지, 엄마에게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모습들이 이모에게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된장찌개랑 장조림 해놨으니까 데워 먹어. 내일 또 올게.”
이모는 식탁 의자에 걸어둔 외투를 집어 들고 소파 앞으로 가 엄마와 눈을 맞췄다. 이모는 쪼그려 앉아 엄마의 손을 잡았다.
“언니, 내일 봐. 연정이랑 밥 잘 먹고.”
이모는 엄마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올렸다. 눈가가 떨렸다. 일어서며 손등으로 코를 쓱 훔치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말없이 이모를 끌어안았다. 젖은 옷 사이로 체온이 전해졌다.
“얼른 씻어. 몸 떠는 거 봐라.”
“이모…”
입을 열었지만 다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어떤 말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현관 앞에서 이모를 문밖까지 배웅했다.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엄마 사고 이후 이모는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집에 들렀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겹쳐 올라왔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를 대충 닦았다. 부엌으로 가 이모가 해두고 간 된장찌개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장조림도 작은 냄비에 덜어 데웠다. 냉장고에서 김치와 멸치볶음을 꺼내 식탁 위에 놓고, 수저 두 벌을 가지런히 맞춰 두었다. 밥솥에서 밥을 퍼 두 개의 밥그릇에 담는 동안에도 엄마는 거실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여전히 개그콘서트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무대 위 사람들이 과장된 몸짓으로 넘어지고, 유행어와 객석 웃음소리가 섞여 흘러나왔다. 나는 소파 앞으로 가 엄마 앞에 등을 보인 채 쪼그려 앉았다. 손을 뒤로 뻗으며 말했다.
“자, 업혀. 엄마.”
엄마는 망설임 없이 두 팔을 내 어깨 앞으로 감아왔다. 가볍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이제는 이 무게가 익숙했다. 축 늘어진 다리가 내 옆구리와 허벅지에 닿았다. 몸을 일으켜 식탁까지 걸어갔다. 엄마를 의자에 앉히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자, 밥 맛있게 묵자.”
생각보다 조금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밝음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기만 바랐다. 엄마는 수저를 들다 말고 나를 봤다. 늘 그랬다. 내가 먼저 무슨 말이든 꺼내야 엄마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엄마, 오늘 수업 때 발표했는데 교수님이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그리고 수업 끝나고 어떤 남자애가 있잖아. 갑자기 내 머리에 손을 이렇게 얹으면서 같이 집에 가자 하는 거 있지. 비 오니까 데려다주겠다고.”
나는 손까지 들어 머리 위에 얹는 시늉을 했다. 엄마가 보고 있는지 확인하며 눈을 크게 뜨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죄송해요. 저 혼자 갈게요, 이랬지. 그냥 모자 쓰고 뛰어왔어. 나 좋아하는갑다 싶긴 했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더라.”
입 안에서 거짓된 문장이 만들어질 때마다 속이 조여왔다. 없는 일을 있는 일처럼 말하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멈출 수는 없었다. 엄마가 내 말을 따라 웃기 시작하면 그날 하루는 그걸로 됐으니까. 나는 손짓을 조금 더 크게 하고 표정까지 보태며 이야기를 부풀렸다. 그러자 엄마가 웃었다. 눈가가 접히고, 이가 다 보이도록 환하게 웃었다. 그제야 엄마는 숟가락을 들었다. 엄마가 밥을 한 숟갈 뜨는 걸 보고 나서야 나도 숟가락을 들었다. 우리 식사는 항상 이렇게 시작됐다. 식탁 위에는 반찬과 국이 놓였고, 그 사이에는 지어낸 하루가 하나씩 올라왔다. 나는 오늘도 엄마가 웃을 수 있도록 말들을 만들어냈다.
아빠는 내가 아주 어릴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내게 아빠는 기억이라기보다 설명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액자 속 얼굴로만 보았고, 종종 엄마 입에서 흘러나오던 이야기들, 학창 시절 누군가 “너는 아빠 없지?”하고 놀릴 수 있게 만들었던 정도의 존재였다. 그 빈자리를 엄마는 두 배 이상의 사랑으로 메워주었다. 안아주고 손을 꽉 잡아주고, 별일 아닌 말에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를 두고 사이가 참 좋은 모녀라고 불렀다. 엄마는 어딜 갈 때마다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모든 엄마와 딸이 다 그렇게 지내는 줄만 알았다. 그만큼 엄마는 빈자리를 가리며 아낌없이 사랑을 줬다. 몸이 조금씩 크고, 내 손이 엄마 손보다 커질 무렵부터 내 꿈은 확실해졌다. 어릴 때 엄마와 공놀이를 하며 운동장 끝까지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 하나를 쫓는 일이 가장 재밌었다. 그 시간들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씩 알려줬다. 중학교 체육시간에 처음 하키를 배운 날, 남들보다 빨리 달리는 순간이 좋았고,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스틱을 쥐는 일이 즐거웠다. 전속력으로 공을 쫓는 동안만큼은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몸을 던져 막고, 골대 쪽으로 달려가 공을 밀어 넣는 순간들이 나를 더 밝게 만들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밀어주었다. 비싼 운동화가 필요할 때도, 대회비가 필요할 때도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고 했다. 시기와 질투가 많은 애들 사이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생겨도 옆에서 나를 응원하는 엄마를 떠올리면 괜히 더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나며 하키 선수를 꿈꿨고, 다행히 재수 없이 체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뒤에 따라붙는 말들이 더 거슬렸다. 엄마 혼자 돈 버는 집에서 체대가 말이 되냐는 말, 운동은 돈 먹는 일인데 그걸 알기는 하냐는 말. 사람들은 걱정하는 척하면서도 비꼬는 말들이었다. 그래도 엄마만은 내 편이었다. 자장가처럼 아빠 이야기를 자주 들려줬다. 아빠가 학창 시절 축구부였다고, 공 차는 남자를 그렇게 좋아하게 됐다고, 그래서인지 연정이도 아빠를 닮아 운동신경이 좋은 것 같다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엄마는 웃었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의 웃음 같기도 하고, 그리움을 나로 치유하는 사람의 웃음 같기도 했다.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하던 날도 그랬다. 엄마는 나보다 더 기뻐했다. 내 손을 붙잡고 펄쩍펄쩍 뛰며 축하해주다가, 갑자기 울었다. 소리 내 울면서도 웃고 있는 엄마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로도 이런 행복한 날이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엄마의 사고는 삼 년 전, 대학에 들어가 첫 학기를 마치고 종강을 맞던 날이었다. 나는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에 들떴다. 동기들과 대학 근처 술집에서 종강파티를 했다. 술을 더 시키자며, 또 사진도 찍자고 했다.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자꾸 확인했다. 낮에 엄마가 몇 시쯤 오냐고 보낸 문자가 자꾸 걸렸다.
“나 지하철 때문에 먼저 가볼게. 재밌게 놀아.”
친구들은 2차 가자며 붙잡았지만, 나는 가방을 챙겨 나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골목에 접어들 때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모였다. 늦은 시간에 이모에게 전화가 오는 일은 드물었다. 전화를 받자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다. 이모는 울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나는 몇 번이고 “왜, 무슨 일인데”를 되물을 때마다 내 목소리도 이미 떨리고 있었다. 몸이 먼저 도로 쪽으로 움직였다. 차 불빛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경적 소리와 사람들 목소리가 겹쳐 들렸지만 귀에 제대로 들어오는 건 없었다. 차선 가까이로 다가가 빈 택시만 찾았다. 뒤에서 누가 뭐라고 소리쳤지만 돌아볼 틈도, 그 말을 들을 정신도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빨리.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나가던 택시 한 대가 보이자 나는 뛰어들어 손을 들었다. 문을 열고 올라타자마자 말했다.
“대한병원으로 가 주세요…”
기사님은 룸미러로 내 얼굴을 흘끗 보더니 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라디오에서는 잡음 사이로 속보가 흘러나왔다. S아울렛에서 큰 화재와 구조물 붕괴가 발생했고, 다수의 부상자가 인근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말. 화재. 붕괴. 부상. 몇 단어가 머릿속에 둔탁하게 부딪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였다. 들것이 쉼 없이 드나들었고, 복도에는 울음소리와 신음이 겹쳐 들렸다. 아울렛에서 옮겨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피와 붕대와 그을음이 뒤섞인 환자들 사이에서 엄마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지나가던 간호사에게 겨우 물어 들은 말은 수술에 들어갔다는 것, 일단 살아는 있다는 것이었다. 이모는 수술실 옆 벽 아래 쭈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옆에서는 이모부가 이모의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이모…”
이모는 힘없이 일어나 나를 끌어안았다. 팔에 들어간 힘이 너무 세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언니한테 가지 말라고 했어야 했는데… 가지 말라고 했어야 했는데…”
이모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숨은 그 사이사이에서 거칠게 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이 굳어버린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눈앞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으면 했다.
엄마와 이모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작은 식당을 함께 운영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골목에 있는 작은 한식집이었다. 점심이면 근처 회사 사람들이 몰려와 밥을 먹고 갔고, 저녁이 되면 단골 아저씨들이 반찬 몇 가지에 소주를 한잔씩 비우다 가곤 하는 식당이었다. 그날은 손님이 많지 않아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았다고 했다. 이모 말로는, 다가오는 내 생일 선물로 엄마가 운동화가 나을지 가방이 나을지 한참 고민하다가 새로 생긴 아울렛에 들러보고 싶다고 했다고 하였다. 이모는 엄마를 아울렛 앞에 내려주고 집으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보호자 확인이 필요하고 수술 동의를 위해 서둘러 와달라는 말뿐이었다. 이모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온 것이다. 수술은 꽤나 길었다. 수술실 앞을 서성이며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한참 뒤에야 수술이 끝났다는 말이 나왔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수술 뒤에도 엄마는 며칠 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엄마는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엄마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의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무너진 구조물에 척추가 크게 손상돼 다시는 혼자 걸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머리에도 큰 충격이 가서 인지 기능이 많이 떨어졌고, 지금 상태로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수준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숫자로 말하면 열두 살에서 열네 살쯤이라고. 의사의 말은 또렷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강렬한 문장이라 머릿속 어디에도 걸리지 못하고, 그대로 나와 이모를 바닥으로 끌어내버렸다. 말들이 다 지나간 뒤에도 귀 안쪽에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남아 있었다. 그때 이후 우리 집은 완전히 뒤집혔다. 엄마가 있던 자리가 비었고, 그 자리에 갓 스무 살이 된 내가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다. 그날 이후 우리의 생활은 원래 가기로 되어 있던 방향에서 점차 멀어졌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나는 엄마를 등에 업어 소파에 앉혔다. 식탁 위에 남은 그릇들을 치우고 설거지를 마쳤다. 물 묻은 손을 행주에 닦고 거실로 돌아오자 텔레비전에서는 맛집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국숫집, 고깃집, 빵집이 차례로 화면을 채웠고 음식이 가까이 잡힐 때마다 엄마 눈동자도 같이 동그래졌다. 나는 수박 한 조각을 포크에 찍어 엄마 입에 넣어주었다. 오물오물 씹을 때마다 눈가와 입가의 주름이 함께 움직였다. 나이와 상관없이 정말 어린애처럼 보였다. 엄마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집 안에만 들어와도 냄새로 설레게 할 수 있을 만큼 그랬다. 내가 학교에서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싸 주었다. 도시락에는 늘 김밥 말고도 한두 가지가 더 들어 있었다. 소시지볶음이든, 계란말이든, 어묵볶음이든 꼭 뭔가 하나가 더 있었다. 친구들은 한 입만 달라고 젓가락을 들이밀었고, 나는 괜히 싫은 티를 내면서도 조금씩 나눠줬다. 그때 내게 가장 확실한 자랑거리였다. 지금은 이모가 대신 김밥을 말아주지만, 가끔은 옛 냄새 같은 것이 떠오른다. 나는 엄마 쪽으로 몸을 조금 더 붙여 머리를 어깨에 기댔다. 창밖에서는 비가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아주 잠깐은 아무 일도 없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머리맡에 있는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눈도 다 뜨지 못한 채 더듬더듬 손을 뻗어 휴대전화 알람을 껐다. 돌아누워 옆을 보니 엄마는 이불을 허리 아래까지 걷어찬 채 자고 있었다. 이불 끝을 잡아 끌어올려 엄마 가슴께까지 덮어주었다. 커튼 틈으로는 전날의 비가 무색할 만큼 맑은 햇살이 가득했다. 비는 그쳤고, 창밖 하늘은 말끔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팔다리가 묵직했다. 어깨를 한 번 돌리고 팔을 길게 뻗자 뼈마디가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깨지 않게 발뒤꿈치에 힘을 싣고 방을 빠져나왔다.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얼굴에 물을 몇 번 끼얹었다. 잠이 덜 깬 얼굴을 수건으로 훑어 닦다가 거울 쪽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왼쪽 눈이 유난히 붉었다. 흰자위 한쪽이 실핏줄로 얽힌 것처럼 충혈돼 있었다. 따갑거나 가렵지는 않지만, 이런 날이면 몸 어딘가에 통증이 늦게 따라붙곤 했다. 또 이러고 말겠지. 생각하고 말았다. 어제 비를 오래 맞은 탓이려니, 몸살 기운쯤으로 넘기며 화장실을 나갔다. 소파 위에 놓여 있던 리모컨을 집어 텔레비전을 켰다. 아침 뉴스를 틀어두고 볼륨을 낮춘 뒤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공기와 통밀 샌드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모가 어제 다녀가며 채워두고 간 것이었다. 나는 출근 전마다 그 샌드위치 하나를 꺼내 먹었다. 그건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잠깐 마음이 놓이는 작은 위안이 되어 주는 행복이었다. 식탁에 앉아 포장을 뜯고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기상 캐스터가 우산을 든 채 서 있었고, 오전에 한 차례 비가 더 지나간 뒤 찬바람이 이어지겠다는 말이 흘렀다. 빵 끝을 베어 먹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겉옷을 하나 더 챙겨 입고 나가야겠다고.
오픈 전 마트 안은 이미 하루를 시작한 직원들의 발소리로 차 있었다. 진열대를 정리하는 손길과 박스를 옮기는 소리가 층층이 겹쳐 들렸다. 입구 앞에서 직원 한 명이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유리문에 전단을 붙이고 있었다. ‘캐셔 모집’이라는 글자가 눈에 걸렸다. 잠깐 그 자리에 시선이 머물렀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던 날이 떠올랐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녁거리를 사려고 잠깐 들른 마트 입구에서 한 전단을 발견했다. ‘청소 근무자 모집.’ 글자 아래에는 나이 제한이 있었고, 그 숫자는 나와 맞지 않는 나이대였다. 그럼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급여가 적힌 줄을 오래 바라봤다. 통장 잔고와 엄마 재활비가 머릿속에 겹쳐 떠올랐다. 마침 마트 조끼를 입은 직원이 옆을 지나갔다. 나는 손을 뻗어 그를 붙잡았다.
“저… 혹시, 저도 이 일 할 수 있을까요.”
말이 입 밖으로 나온 뒤에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때 그 직원이 점장님이었다는 건 입사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점장님은 내 얼굴과 전단지, 다시 얼굴을 천천히 훑어본 뒤 물었다.
“힘들 텐데, 해볼래요.”
“네. 할 수 있습니다.”
종이 몇 장과 몇 개의 질문으로 나는 서울마트 청소 직원이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하루를 견디는 일이 내 생활의 대부분이 될 거라는 걸.
유니폼 조끼를 챙겨 입고 청소실에서 걸레를 집어 들었다. 비상구를 통해 2층으로 향했다. 한쪽에는 키즈카페가 붙어 있는 만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조용했다. 문이 반쯤 열린 놀이방에는 몇몇 아이들은 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바닥에 두고 결을 따라 걸레를 밀었다. 어디선가 탱탱공 하나가 굴러 나왔다. 공이 지나온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아이들이 서로 공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나는 걸레 끝으로 공을 건드려 다시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공을 밀어내는 감촉이 이상하게 남았다. 공이 안쪽으로 굴러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 짧은 움직임 위로 내 모습이 겹쳐졌다. 경기장 위를 끝까지 굴러가던 공, 그걸 쫓아 달리던 발, 골대 쪽으로 몸을 던지던 순간들까지. 한쪽에서 나를 지켜보던 엄마의 얼굴. 걸레를 쥔 손이 멈췄다. 유리창 너머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웃음소리는 분명 가까이 있었지만, 어딘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층들도 마찬가지로 한산했다. 지하 1층 시식 코너를 지나면서 보인 건 비어 있는 시식 접시들이었다. 빈 만두 봉지가 몇 개 놓여 있지 않은 걸 보며, 오늘은 다른 때보다 손님이 적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걸레를 밀었다. 식품 코너 쪽으로 들어서자 바닥 위에 새까만 자국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바퀴가 지나간 자리였다. 물기 위에 눌린 채 번져 있는 선들. 닦아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선들. 그 자국들이 싫었다. 일이 늘어나서라기보다 이유 없이 거슬렸다. 내가 아무리 문질러도 다시 남는 흔적처럼 자꾸 생겨났다. 걸레에 힘을 더 줬다. 손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같은 자리를 밀었다. 그때 점장님이 옆을 지나갔다.
“고생해라.”
하고 싶은 말은 가득했지만 입 밖으로 나올 수는 없었다. 다시 바닥을 밀었다. 일을 끝내고 사무실로 올라와 유니폼 조끼를 벗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대 앞 거울에 비친 얼굴은 창백했다. 아침보다 눈이 더 붉어져 있었다. 한쪽 눈이 피로에 잠식된 것처럼 충혈되어 있었다. 계속해서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다 뒤늦게 몸이 떨려오는 걸 느꼈다. 속에서부터 부서지는 듯한 떨림이었다.
이른 아침은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한 번에 일어나지 못하고 뒤척이다 겨우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눌렀다. 소리가 멎고 나서 조용해졌다. 옆을 보니 엄마도 눈을 뜨고 있었다. 엄마는 내 손을 잡았다.
“왜 이렇게 뜨거워.”
엄마는 내 손등을 더듬었다. 나는 다른 손으로 엄마 손을 감쌌다.
“괜찮아. 뜨거운 게 아니고… 따뜻한 거야.”
나는 이불을 끌어올려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나 다녀올게.”
엄마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계속 나를 보았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양쪽 눈이 모두 충혈돼 있었고 눈동자 주변이 벌겋게 번져 있었다. 숨이 조금만 가빠져도 몸이 안쪽에서부터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씻는 것도 버거웠다. 그래도 출근 준비를 멈출 수는 없었다. 거실로 나와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서는 기상 캐스터가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다. 며칠째 이어지는 가을비였다.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입안은 말라 있었지만 억지로 몇 번 씹어 삼켰다. 더는 넘어가지 않았다. 현관에 있는 우산을 집어 들었다.
마트에 도착해 청소실 문을 열었다. 벽에 기대 세워둔 대걸레를 들었다. 쥐는 순간 손목이 꺾이는 것처럼 힘이 빠졌다.
“연정아, 너 괜찮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캐셔 이모였다.
얘 “얼굴 왜 이래. 어디 안 좋아?”
나는 웃는 척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좀 피곤해서 그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는 힘없이 떨렸다. 벌써 세 번째였다.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게. 누가 봐도 아픈 안색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사무실 안을 청소하고 있던 때였다. 점장님이 내 손에 들린 걸레를 그대로 빼앗았다.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점장님은 말없이 바닥을 밀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만 일하고 집에 가서 쉬어.”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말은 그렇게 나왔지만 힘이 실리지 않았다. 점장님은 걸레질을 멈추지 않았다.
“네 상태 봐. 괜히 버티지 말고 가.”
점장님의 말투는 거칠었지만 손은 계속 바닥을 밀고 있었다.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구석에 가 조끼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직원들 눈치를 살피며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약국에 들렀다. 해열제를 받으면서도 병원 꼭 가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만 두고 나왔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잿빛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 바로 앞에 있어야 할 휠체어가 보이지 않았다. 집안에는 엄마도, 이모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즉시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 엄마랑 같이 있어? 집에 없는데?”
“식당 정리하고 이제 가려고 했는데. 언니 없어?”
전화가 끊기고 가슴 안쪽이 떨려왔다. 바로 밖으로 뛰어나와 달렸다.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굵어졌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혹시 휠체어 탄 여자 못 보셨을까요? 단발머리이고…”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고, 손을 빼내며 빠르게 지나갔다. 아무도 제대로 멈춰 주지 않았다. 빗속에서 목소리가 흐려졌다. 우산을 쓰고 가던 여학생이 멈춰 섰다.
“저, 봤어요. 저쪽으로 가시던데요.”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뛰었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들러붙어 눈앞을 가렸다. 잠깐 멈춰 숨을 고르다가 눈앞에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서울마트였다. 나는 설마 싶은 마음에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로 인해 마트 바닥이 젖어 미끄러웠다. 시야 아래로 바퀴 자국들이 보였다. 검게 눌린 자국들이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자국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휠체어 바퀴가 보였다. 그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의 형상도 서서히 보였다. 돌아서서 바로 비상구로 뛰었다. 1층 문을 밀고 나왔을 때, 마트 입구 앞에는 캐셔 이모가 휠체어를 입구까지 밀어주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은 엄마였다. 나는 다시 뛰었다.
“엄마!”
숨이 끊어질 것처럼 어지러웠다. 휠체어 앞에 서서 멈췄다.
“엄마 왜 여기 있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왜 말도 없이 나가.”
목소리가 생각보다 커졌고 화를 냈지만 눈물도 같이 나왔다.
엄마는 나를 올려다봤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었다. 무릎 위에 올려둔 걸 내밀었다. 늘 냉장고에 있던 통밀 샌드위치였다.
“연정이 이거 좋아하잖아. 학교 갈 때 먹으라고..”
말의 뜻은 분명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엄마 무릎에 파묻혀 울음을 쏟아냈다. 빗물과 눈물이 섞여 얼굴을 타고 흘렀다. 엄마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정아 너 뜨거워.”
나는 여기서 어떤 대답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 나 아파. 엄마.”
매만지는 엄마 손은 따뜻했다. 나는 엄마를 꼭 껴안았다. 엄마 머리카락에는 빗방울이 솔솔 맺혀 있었다. 비는 언제 그쳤는지 모르게 잦아들어 있었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집고 나왔다. 바닥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있었다. 휠체어 바퀴가 그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 물이 밀리며 검게 눌린 자국 하나가 길게 남았다.
* 2026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참여자가 작성한 글입니다.